믿고 세례를 받아도 구원받지 못하는 자
사도행전 2장 38절『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여기에는 네 단계가 있다. 회개, 세례, 죄사함, 성령의 선물이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는『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2장 28절과 3장 19절을 비교하면 세례가 돌이키는 것이고, 성령의 선물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돌이키는 것』이 be converted(kjv), turn to God(niv)으로 번역되어 있다. 과거에 우리말 성경에는 회심이라고 번역한 바가 있다. 그래서 회개와 회심이라는 말이 섞여버리고, 회심이라는 말이 사라져버렸다. 영어에서도 convert가 회심이고, 회개는 repent로 사용하는데, 거의 convert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마가복음 4장 1절부터 네가지 밭의 비유가 나오는데, 앞의 세가지(길가, 돌짝, 가시떨기 밭)는 회개하지 않은 자의 비유이고, 마지막 네번째의 밭(좋은 밭)은 회개한 밭이다. 세가지 밭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말씀하셨다. 4장 12절에서『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여기에서도『돌이켜』가 be converted(kjv)로 번역되었다. 만일 『돌이켜』라는 말을 turn to(niv)로 번역하게 되면 repent와 같은 의미가 된다. 곧 회개가 돌이키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회개는 가는 길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돌이켜』는 세례 곧 죽음으로 나타낸다. 옛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돌이켜』라는 말은『거듭남』으로 연결된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야만 한다. 이게 세례다. 세례는 로마서 6장 3-4절에서 처럼 『장사지내는 바』가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32-34절에서『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여기에 기록한 누가가 사도행전도 기록했다. 여기에서도『돌이키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옛것을 버리는 것이다. 베드로는 삼년 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며,『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었는데, 예수님이 이렇게『돌이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상황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왕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런 모든 생각과 의지와 뜻을 버리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생전에 세번이나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으러 왔으며, 삼일 후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을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자가 없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되는 것에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돌이키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대신 십자가를 져 주심에 감사할 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연합되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 후의 영광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날밤 체포되고 밤새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 도망갔다. 회개는 십자가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십자가로 방향을 돌리는 삶이 되지 않으면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다.
죄의 용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다음의 문제다. 죽지 않으면 죄 용서가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도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죄 용서를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세례가 죽음을 나타내는데, 죽지는 않고 형식적 세례의 의식만 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할례 곧 십자가의 죽음에 연합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식적 세례를 받은 자도 회개하여 십자가로 돌이켜야만 한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마술장이 시몬의 이야기다. 사도행전 8장 13절에서『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그런데 마술장이 시몬이 베드로가 설교하는 곳에 왔다. 그리고 돈으로 성령을 사려고 했다. 베드로는 빌립의 인도를 받아 세례를 받은 마술장이 시몬에게 악독이 가득한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말한 것이다. 사도행전 8장 21-22절에서『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과거 청교도들은 마술장이 시몬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은 국교가 기독교(개신교)였다. 그래서 모두가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지 휫필드라는 목사가『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당시 믿고 세례를 받으면, 모두가 거듭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친 것이다. 그 이후에는 거듭남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죄사함만 받으면 구원받는 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구원의 핵심은 죄사함이 아니라 거듭남이다. 거듭난 자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거듭나는 것은 옛것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런데 죽지는 않고 죄사함만 받으려고 하므로, 믿고 세례를 받아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회개하기 전에는 십자가에 반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말하면서 십자가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회개일 뿐,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가 아닌 것이다. 회개는 죄를 반성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에 들어가는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 회개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다. 회개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가짜 복음이 되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이 예수를 시인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시인하는데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는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자 들이다. 그 외에는 예수님이 알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게 열처녀의 비유와 같은 것이다. 불이 끄지지 않는 믿음,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믿음, 옛사람은 죽어버렸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 미련한 다섯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가 많다.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영원히 끄지지 않는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에 의지하는 자들은 거듭나도 옛사람(죄성)은 죽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거듭남을 마음의 상태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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