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믿음은 선물이다
사도행전 26장 15-16절에서『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사도바울이 크리스챤을 핍박했는데, 갑자기 예수님의 종이 된 것 같이 여겨진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사탄에게 붙잡혀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빛(복음의 말씀)이 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으면,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하듯이, 오히려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6장 17-18절『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이 말은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죽기 전에, 재판받던 아그립바 왕에게 간증한 말이다. 17-18절에서 사도바울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주님이 하신 일이다. 왜 그렇게 하신 것인가? 복음의 능력이다.『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이 말이『거듭나게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구원을 설명하면서 네가지를 말했다.『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 받고, 기업을 얻는 것』이다. 이 네가지를 출애굽하는 히브리 백성들과 비교하면,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는 어둠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돌아오게 했다. 그런데, 홍해바다를 건넜지만, 광야에서 돌이키지 않으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왜 돌이키지 않은 것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개는 순종과 직결된다. 순종하지 않는 회개는 거짓 회개임을 나타낸다. 거짓 회개인가 아닌가는 하나님과 자신 만이 알 것이다. 거짓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용서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는 자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성경은 말한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을 제외하고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앞에서 왜 순종하지 않았는가? 오늘날도 수많은 교회 사람들이 날마다 회개한다면서 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사탄의 권세에서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 사탄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자기의 주인됨을 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자기의 주인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먼저 육이 반응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키면, 『죽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자가 새생명으로 부활한다는 약속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약속이 있는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믿음이다.
여기서 기업을 얻는 것이 가나안(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주님의 몸을 이루게 된다. 주님의 몸을 이루는 성도들은 돌이켜 순종하므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만 들어간다. 믿음이 오지 않으면 들어갈 자가 없다는 것이다. 믿음이 오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된다. 가나안 땅에 열두명의 정탐꾼이 함께 들어가서 40일 동안 보고 돌아왔다. 그런데 열명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고, 두명만『들어가면 산다』라고 말했는데, 이 차이는 무엇인가? 두명은 약속의 말씀을 확인하고 돌아왔지만, 열명은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머물고 있는 이유가 바로 약속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을 주신다. 돌이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전의 세상죄를 묻지도 않으신다. 오직 하나,『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유는 다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말을 하지만, 자기가 주인 노룻을 하면,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그런 믿음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죄에 묶여 있다. 심지어 수많은 교회 사람들도 세상죄를 걱정한다. 자신들이 지은 죄만 걱정할 뿐이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죄가 더 큰 죄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켜, 피의 새언약으로 들어오는 자를 관대히 여기신다. 피의 새언약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는 자를 말한다.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라는 것이다.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는 삶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기적을 경험했다고 할지라도『날마다 죽노라』가 아니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날마다 죽노라』가 아니면 불순종의 아담같이, 므리바에서 반석을 쳐 물을 내려고 한 모세와 같이, 이스마엘을 낳은 아브람같이,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버린 제자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은 날마다 세상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그런 것이 아니라,『날마다 죽노라』가 되는 것이다.『날마다 죽노라』가 안되면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반응하게 된다. 야곱이 그러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삼촌 라반이 두려워 야반도주하고, 얍복강 앞에서는 형 에서가 두려워 강을 건너지 못했다. 회개하여 돌이키기 전에는 모두가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이다. 얍복강을 건너지 못한 야곱은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그의 환도뼈를 부셔버렸다. 육의 마음으로 의지할 곳이 없도록 만드신 것이다.
사도행전 26장 18절에서『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의 영어성경(kjv)은『To open their eyes, and to turn them from darkness to light, and from the power of Satan unto God, that they may receive forgiveness of sins, and inheritance among them which are sanctified by faith that is in me.』 여기에서 마지막 부분『faith that is in me.』이 잘못되어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나를 믿어』가 영어 성경을 번역하면『내(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다. 우리 말 성경은『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다. 객관적 대상을 믿는다는 것은『예수님이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그런 믿음이다. 불완전한 믿음이다. 믿음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수의 믿음인가? 나의 믿음인가? 나를 부인한 예수의 믿음이 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내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나를 부인하고 예수 안에 있는 자』가 거듭나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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