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우리를


요한복음 3장 14-15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은 이 땅에서 육체가 살아있을 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다. 마치 노아시대 때 방주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바람이 임의로 불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영으로 난 사람은 이렇다』고 말씀하셨다.『바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영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3장 11절에서『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3장 2절에서『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증거의 말씀은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가나안 땅 앞에서 열정탐꾼의 말을 믿고『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을 지적하신다. 믿음이란 자기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만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3장 12절에서『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거듭난다는 것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거듭나지 못하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이다. 믿음으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이어서 3장 14-15절을 설명하고 있다.

출애굽한 유대인들은 1년만에 광야에서 첫 유월절을 지켰다. 그리고 가나안 땅 앞에서 정탐꾼을 보냈지만 백성들은 열정탐꾼의 말을 믿고『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놀라운 일들을 믿지만, 정작 생활 속에서는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열매없는 믿음은 죽은 지식에 불과하다. 믿음은 행함을 동반한다. 행함은 주님과 함께 걷고, 일하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은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 때 하나님이 불뱀을 보냈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물려 죽게했다. 그들은 가나안 땅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자들이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자들인데, 여전히 불평 불만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예수를 믿으므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면 다 해결되었으므로『하나님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에 있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다. 순종은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부모로부터 받은 육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세상 나라에 묶여 있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된다. 회개는 순종하지 않는 삶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어떻게 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과거에 얽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계속 과거의 죄를 붙잡고 씨름하는 자들이 된다. 우리가 순종하여 『니고데모가 받지 못한 것』을 받는다면 구원은 즉시 이루어질 것이다. 비록 현재적 육체의 삶이 어떨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면,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 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요셉이 감옥에 갇혀있을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는 것을 믿은 것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뀌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 가버렸다.『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불뱀에 물린 자가 놋뱀을 바라보았으므로 살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불뱀에 물린 자라고 말씀하시니, 말씀을 받을 수 없어서 나가 버린 것이다. 니고데모는 당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종교인이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불뱀에 물려 죽게 했던 유대인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거듭날 수 없으며, 불뱀에 물려 죽게 하는 진노 아래 있는 자가 된다. 구약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죄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일들을 믿지 않은 것이 죄다.

요한복음 8장 46절에서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고 하셨다. 진리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리를 말하는데 안 믿는 것이다. 요한복음 18장 37절에서『진리에 속한 자는 누구나 나의 음성을 듣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자가 된다. 예수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에 얽혀 있는 자들과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 죄에 대해서 죽으라고 하는데 예수의 피만 의지하고 죄악으로부터 돌이키지 않는 자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모두가 진노의 자녀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회개는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죽은 자가 될 때, 하나님이 믿음의 선물을 주신다. 죽은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 못박힌 것이 아니라, 함께 못박혔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십자가에 못박히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나(혼적)는 죽은 것이다. 내(영적)가 이전의 육체에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신령한 몸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에서 육체는 신령한 몸을 말한다. 믿음으로 이루어진 육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살게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상이다. 실제상황이다. 눈에 보이는 육체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게된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영적 정체성을 깨닫는 자 만이『하나님이 왜 영을 살리시고 싶은 지』를 알게된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죽었던 영이 잃어버린 어린양이요, 죄인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5장 32절에서『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시고, 누가복음 15장에서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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