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믿음은 언제 받는가?


사도행전 26장 18절『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이 말은 아그립바 왕으로부터 재판 중에 바울이 간증하는 말이다. 오늘날은 죄가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죄사함이 먼저가 아니라, 사탄의 권세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하고, 그 전에 눈을 뜨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시작은 어두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양심의 눈이 뜨여져서 자신이 어둠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사탄의 권세로부터 나올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이 비춰졌다』고 말한다.

기업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믿음을 받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에베소서 1장 7-11절에서『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그의 피로 말미암아『속량 곧 죄사함』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kjv), 우리말 성경은 속량이 죄사함인 것처럼 느껴지게 번역되었으나, 속량이 먼저고, 속량된 자에게 죄사함이 있다는 것이다. 

속량은 그리스도의 피흘려 죽으심이 역사하시고, 죄사함은 그 피의 결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피값을 사탄에게 지불하고 회개하는 죄인들을 샀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더러움을 씻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을 사서 그에게 기업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 속량된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된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서『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유업이 기업이 된다. 3장 26-27절에서는『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27절이 이유이고 26절이 결과다. 그 결과를 27절에서 이유로 설명한다. 그리스도로 옷입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 바로 속량이다. 그래서 속량이 세례를 의미한다.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 세례는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세례는 예수의 죽으심과 합하여지는 것이다. 세례의 순간 예수와 함께 죽은 자임을 확인받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죽음을 나타낸다.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 사시는 것이다. 주님이 사서 죄를 사해 주신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없다.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나는 너를 모른다. 불법을 저지러는 자여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후에 아나니아가 그를 찾아온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주의 이름을 불러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의 것이 되었다는 고백이다.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말씀이다. 귀신들도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를 알게된다. 사도행전에서 어떤 사람이 시험적으로 예수를 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귀신이 말하기를『나는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것과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의미다. 아들이 되지 않으면 아버지라고 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회개하지도,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하나님은 너는 누구인가? 라고 묻지 않겠는가?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회개는 탐욕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에 갇힌 자다. 즉 여전히 구원받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뜻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믿음이 온 사람은 회개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믿음이 오지 않은 자는 먼저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그의 죽으심과 연합되라는 것이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에게만 베푸신다.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 만이 구원의 길이다. 이것이 회개라는 말씀이다. 베드로후서 1장 1-2절에서『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베드로와 같이 동일한 보배로운 믿음을 얻게 된다. 베드로도 회개하기 전에는 예수를 버리는 자였다. 그러나 회개하여 돌이켜 하나님으로부터 보배로운 믿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오늘날『예수믿고 천국간다』는 말은 그 믿음이 누구의 믿음이라는 것인가? 자기가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라는 존재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된 자에게 하나님의 보배로운 믿음의 선물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지 못했다면, 살아있으나 죽은 자라는 것이다. 죄로 인하여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닫는 자만 예수와 함께 죽는 자가 된다. 율법에 의해서 죄에 대헤서 죽는 것이다. 죽지 않은 자는 죄사함이 없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될 때, 보배로운 믿음이 계시되는 것이다. 복음에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 내가 믿는 믿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이르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유다서 1장 3절에서『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단번에 주신 믿음이 바로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믿음이 된다. 단번에 주신 믿음을 받은 자는 힘써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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