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예수께로 인도하신다
마가복음 16장 16절『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여기에는 회개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귀절 만을 보고 구원을 판단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이 말씀은 16장 14절의 예수님 부활하신 이후의 말씀이다.『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삼년간 사역하시면서 유월절에 대해서 세번 언급하셨다. 그리스도 자신은 죽으러 왔으며 삼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매년 말씀하셨다.『인자는 제사장들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그들이 음식먹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셔서 믿음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함을 꾸짖었다.『완악하다』는 말은 철저히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삼년동안 예수님이 부활을 말했는데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서『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이 말씀을 믿지 않는 제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믿음과 지적인 동의는 어떻게 다른가?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들을 인정하는 것은 지적인 동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은 그 부활이 믿는다고 하는 자의 부활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활은 거듭남의 첫 열매가 된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는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갑자기 사라지신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고는 부활과 연합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자는 이 복음을 온 천하에 전하는 자가 된다.
이 복음은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회개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그래서 회개하는 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가 된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자기생각대로 부활을 믿는 것이다. 거듭남도 회개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대로 믿게된다. 오직 회개하는 자는 못박히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회개하고 믿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자신들의 구원자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대부분 부활을 바라보는 믿음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믿는 것이다.
오늘날 삶 속에서 부활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부활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지적인 동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히 자기가 주인인 삶을 사는 자가 된다. 아무리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고 말을 해도, 완악한 자라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다. 마가복음 1장의 회개의 의미를 받아드리지 않고, 마가복음 16장의『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을 받아드려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부활을 말했는데도,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완악한 자라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만, 믿는다고 하는 자에게 부활이 다가오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완악한 자가 된다. 완악한 자는 스스로 회개했다고 말을 해도, 하나님께는 회개하지 않은 자가 된다.
회개하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들어가게 된다. 바울은 승천하신 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삼일간 장님이 되어버렸다. 삼일간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생각했을 것이다. 구원은 못박히신 그리스도에게 들어가는 자에게만 일어나는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십자가에 들어가는 자에게만, 십자가의 예수가 완악한 인간들의 죄가 되는 것이다. 이게 회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예수께로 인도하신다. 예수의 죽음이 자신들의 죄로 인식되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에게로 들어가는 자만 깨닫는 것이다. 그 분은 회개하는 자의 죄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십자가로 들어오는 자의 죄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자들이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자신의 죄를 대신했다고 믿음으로 감사한다. 그러나 십자가로 들어가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회개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같이 처형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망치로 모든 인간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아버리고 싶은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가시를 박아버리고 싶을 만큼 악이 가득한 자들이다. 이게 정죄함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정죄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시지 않으신다. 오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고통을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 마귀는 쾌락을 느끼지만, 하나님은 고통을 느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죄를 버리고, 악과 싸우는 자가 된다. 악과 싸우는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나의 죄가 하나님의 고통으로 깨닫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자기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바라보시고, 고통스러워 하신다.
죽임당한 어린양은 영어로 kil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sla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갈가리 찟겨 죽은 것을 나타낸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고통이 바로 십자가에서 교차되는 것이다. 로마서 4장 25절에서『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여기서『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말로만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여 떠나가라』라고 말할 것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만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만 회개하는 자가 된다.
예수님은 단 한번의 죽음으로 족하다. 그러나 인간들은 매일 매일 죽음을 확인해야만 한다. 사도바울 처럼『날마다 죽노라』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매일 예수님의 죽음을 요구한다. 그들에게는 매일 매일 예수의 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예수의 죽음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날마다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된다. 중간 지대는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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