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땅을 뒤덮은 미혹, 회개없는 구원
마가복음 16장 14-16절『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주님이 부활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믿고 세례받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부인하는 자가 된다. 구원이 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빌립보 교회에서는『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한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거듭난 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래서 휴거에 대해서 말한다. 교회마다 영적 상황이 다르다. 계시록에서 일곱교회에 대해서 말하는데, 마찬가지로 영적 상황이 다르게 나타난다. 교회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 상태가 어떠한가가 구원의 기준이 된다.
미지근한 교회에 대해서는『토하여 내친다』고 말씀하셨다. 가짜 교회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출애굽하여 가나안 앞에서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하는 자들과 같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판단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믿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믿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앞에서 드러나게 된다. 이 믿음의 기준은 출애굽하는 믿음이 아니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그 중간 과정에서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고,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았으며, 맛나를 먹는 놀라운 경험을 해도, 가나안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두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백성이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온갖 기적을 경험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가버린 믿음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동일한 상황이 나타나면 십자가의 예수를 버릴 자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열정탐꾼의 말을 듣고 통곡한 모든 백성들인가?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열정탐꾼의 말을 믿고 통곡할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는 자가 된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에 대해서 사도행전 8장 13절에서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그런데 베드로가 마술장이 시몬에게『악독이 가득한 자』라고 말했다. 믿고 세례를 받기 전에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함에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회개를 악함으로부터 돌이키지 않고, 죄를 고백하고 반성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함으로부터 돌이키는 회개가 되지 않는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회개가 아닌 것이다. 악함은 바로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원죄가 바로 악함이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믿고 세례받은 사람들은 정말 회개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 세례를 받았다면, 정말 악함으로부터 돌이켜야만 한다. 악함으로 부터 돌이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야만 한다.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못박는 것이다. 세상의 것이 더 좋게 여겨지고, 죄를 지어도 죄의식도 없는 상태가 되면, 여전히 악함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렇게 살아왔더라도,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거듭나게 해 주실 것이다. 거듭남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이전의 것을 기억하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이전의 것은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날마다 죄를 짓는 자다. 예수의 피를 믿고 죄악에 대해서 둔감하다. 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생각한다. 두려우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주님이 책망하시고, 진노하신다. 그러나 회개한 자는 날마다 악과 싸워이긴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악으로 부터 벗어난다. 죄를 짓는 것이 괴롭고 불편하게 여겨진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기는 자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다. 사탄은 날마다 악의 씨를 뿌려댄다. 그래서 여름날 날마다 풀을 베듯이 악의 잡초를 제거해야만 된다. 육체가 죽을 때까지 영적 전쟁은 이어진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이 말씀은 네가지 밭의 비유를 하시고 난 뒤의 말씀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에는 와 닿지만 생활에서는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다. 마귀가 씨를 먹기 때문이다. 생활의 염려가 말씀을 없애버린다. 돈에 의해서 말씀의 씨가 타버린다. 오직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에게만 말씀의 씨가 발아하여, 수천배의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밭은 인내의 결실을 거두게 된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가 된다. 돌이키는 것은『be converted』(회심)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회개하는 자가 돌이키(회심)게 되는데, 마치 회심이 회개처럼 여겨져서 같은 말처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회개하는 자가 돌이키며, 거듭나게 된다. 오늘날은 대부분 말로는 회개했다고 하지만 돌이키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돌이키는 삶이 없이는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다.
돌이키는 삶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삶으로 연결된다. 회개와 돌이킴은 연결되어 있다. 돌이키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주인인 상태에서 그리스도가 주인인 삶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이 삶은 오직 십자가에서만 이루어진다. 사도바울은『날마다 죽노라』를 말하고 있다. 구원의 핵심은 흑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죄 사함을 얻는다. 죄사함이 먼저가 아니라 어둠으로부터 먼저 벗어나야만 구원받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둠에 갇혀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복음을 통해서 『회개하여 돌이켜』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한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장사지내는 바가 되는 것이다. 회개하여 세례받는 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말한다. 이전의 것은 죽고, 다른 피조물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마음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다른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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