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우선순위


갈라디아서 3장 23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교회 사람들은 믿음이 왔기 때문에 교회로 나오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믿는 것은 부르심을 입은 자의 자기 믿음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자기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판단하여 교회로 나온 자가 된다. 그러나 택한 자의 믿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율법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3장 22절에 있다.『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여기서『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율법에 갇혀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약속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그리스도의 믿음과 연합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공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지만 적용되는 것은 회개하여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 뿐이다. 이것의 예화가 아브라함, 열 정탐꾼, 베드로의 이야기와 같다는 것이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온갖 기적과 경험을 했다.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았다. 성경에 귀신들린 자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귀신들린 자가『나와 무슨 상관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는『주여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당신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했다.

제자들은 예수가 왕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고난을 당하여 죽고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예수님 머리 위에 부은 한 여인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4장 3-4절에서『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라고 비난하였다. 예수님은 좋은 일(장례준비)을 했다고 칭찬하며,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한 여인은 누구인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이 여자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마가복음 14장 8절에서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14장 3-4절의『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라는 말과 대비된다.『향유』라는 매개체가 하나는 예수님의 장례용이 되고, 하나는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이 되는 것이다. 향유의 우선순위는 장례이고, 가난한 사람에게 돕는 것은 그 다음의 순서다. 왜냐하면 마가복음 14장 7절에서『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장례에 참여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먼저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게 복음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함께 무덤에 들어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함께 장사되지 않으면 예수와 상관없는 자가 된다. 장례식에 참석한 것만 해도 죽은 자에게는 고마운 일인데, 죽은 자와 함께 장사되라니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과거에 순장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보면『순장은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특정한 인물을 매장할 때 함께 묻는 것으로, 왕이나 귀족 같은 특권계급이 죽었을 때 신하나 시종 등을 강제 또는 스스로 죽게 하여 묻었다』고 한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함께 묻혀야 할 것은 살아있는 육이 아니라, 탐욕의 속사람(옛사람)을 말한다.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탐욕인 옛사람의 죽음을 먼저 전하지 않으면 우선순위가 잘못되는 것이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교회와 선교사들이 활동하지만, 옛사람의 죽음을 먼저 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직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가난한 자를 먼저 돕고, 그래서 그것이 복음의 전부인양 옛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옛사람의 죽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모두가 99세까지의 아브람이 되며, 가나안 땅 앞에서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자가 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간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옛사람의 장사를 말하지 않는다면 마태복음 23장 15절에서 말하는 자가 될 것이다.『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6-17절에서『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건물을 개인 소유화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만몬주의에 빠진 탐욕스러운 자들을 본다. 그들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의 한명이었다. 그는 도둑질하는 자였다. 헌금 함에서 돈을 훔쳤다. 그는 돈을 사랑하는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귀신도 쫒고 했지만, 그의 속사람은 탐욕이었다. 그의 주인은 예수가 아니라 탐욕이었다. 그래서 사탄은 가롯유다를 사용했다. 그런데 나머지 제자들은 가롯유다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이『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쫒았다. 단 한가지를 제외하고는 다 버렸다. 못버린 것이 바로『자기』라는 옛사람이다. 이 옛사람은 육체의 주인처럼 기득권을 행사하려고 한다. 구원의 관건은 옛사람의 처리에 달려있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새사람이 되어 다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다고 해도 옛사람이 처리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로 들어가지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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