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는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다
빌립보서 3장 8-9절『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립보는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시이름이다.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서 몰려드는 그런 곳이었다. 바울은『세상에서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 예수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는 말을 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는 회개하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회개하는 자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다. 무엇을 아는 것인가? 이 세상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악으로 가득한 자가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죄악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살아 생전에 심판을 받는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심판이 바로 2000년 전에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 자는 육체가 죽을 때까지, 예수와 연합된 삶을 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 된다.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는 삶은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이 와도 기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성경에서 욥의 이야기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욥은 오직 주님 만을 바라보았다. 욥기 19장 25절에서『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은 악에서 떠난 자였으나, 하나님이 사탄으로 하여금 목숨을 제외하고는 다 빼앗도록 하락하셨다. 욥의 생각에『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위로하기 위해 와서 문제가 생겼다. 친구들이 와서 위로 한 후에 욥은 스스로『자기 애』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왜 자기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이 오기 전에는 이런 고통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믿었지만, 자기 애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 욥기 3장 1절에서 처럼, 욥은 입을 열어 자기 생일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이게 휴머니즘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자기 아들을 죽여서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하셨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자신의 육에 반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구약시대에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 땅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육에 반응하면서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다. 회개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모든 장애물을 없애 버릴 것이다. 회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교회 사람들이 자신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회개하도록 이끄신다. 바울과 같이 계시를 나타내시거나, 욥과 같이 사탄을 통해서 고통을 더하게 하시거나, 야곱과 같이 하나님이 직접 그의 환도뼈를 치시거나, 주변의 사람(친구)들을 통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나게 하신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악 가운데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양한 방법으로 빛을 비춰주실 때,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스스로 거듭나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여러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발견하고 돌아서라는 말씀이다. 자기의 의에 빠져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수풀 속에 숨어 있었던 아담과 하와를 불렀던 것처럼, 교회 안에서 숨어있는 자를 불러내실 것이다.
욥은 잘못된 친구들을 통해서 자기의 의가 드러나게 되고, 회개하였으며, 하나님은 욥기 42장 10절에서 은혜를 베푸셨다.『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자기의 의는 하나님의 의보다 더 높아진다.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자기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겸손하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속으로는 자기의 의에 빠져 있지만, 겉으로는 외식하고 있는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은 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모든 것을 다 가져가실 것이다. 그래서 상황이 어려울 때, 회개하는 자는 은혜를 입은 자가 된다. 회개는 주변의 인간이 기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나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상황에 얽혀있는 모든 자들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는 인본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본다. 대표적인 것이『가정을 회복하라』는 것이다.『가정을 회복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된다』고 말한다. 신앙에 있어서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러나 가정에 있어서 문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원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하면 가정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인간들이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회복을 생각한다면 본질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만이 구원이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회개하는 자의 열매가 될 것이다.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신앙이 대단하고, 성경 지식도 많이 있어서, 교회에서 지도자가 되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그를 치시는 날은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고통이 완전하게 되었을 때,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고통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회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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