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자
학개 2장 18-19절『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개와 스가랴는 느헤미아와 에스라 시대에 성전 재건에 격려했던 선지자들이다. 성전을 재건하던 때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스가랴도 같은 말을 했다. 8장 9절에서『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날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학개』라는 말은 주님의 명절(초막절)이라는 뜻이 있다. 학개 2장 1절에서『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초막절이 끝나고 말씀하셨다. 2장 3절에서『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남아있는 자들은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에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자들이다. 그 당시 그들의 나이는 80세가 넘었을 것이다. 2장 9절에서『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은 초라한 것이었는데,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학개 1장에서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꾸짖었다. 아직 건축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자기를 살피라고 말씀하셨다. 성전 재건에 대해서는 관심없고, 자기 집 짓는게 오히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재앙을 내리게 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성전의 준비가 되자, 성전 재건을 위해서, 이들은 솔로몬 당시 성전을 건축했을 때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대로 하고자 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역대하 5장 1-4절에서 아버지 다윗이 드린 은과 금으로 된 모든 기구를 가져왔으며, 언약궤를 모시도록 했으며, 5장 13-14절에서는 이들이 언약궤를 옮기면서 찬양했다. 역대하 7장 1-2절에서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다. 그래서 여호와의 전에 영광이 가득했다고 한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여, 금은 기구를 두고, 언약궤를 모시고, 찬양하고, 기도를 드리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햇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성전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일 것이다. 회개하는 자들이 거듭나서 성도들 속에 성전을 둘 때, 성령이 임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전에 영광이 가득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을 대입시켜보면, 사탄의 어둠에 사로 잡혀 무너져 버린 터를 다시 세우는 일에 더 헌신을 해야함에도, 자신들의 삶의 안락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교회에서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생각하여, 건물을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며, 세속적인 탐욕에 젖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되지 못하면, 성령이 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못한다. 시내산에서 강림하신 주님의 발은 두 돌판이라고 말한다. 에스겔서에서는 성소를 주님의 발등상을 모시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주의 발 아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들이 나팔을 불고, 주님을 찬양을 한다는 것은 어둠에 있는 자들에게 영혼을 깨워,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불이 임하시는 것이다.
역대하 7장 8-9절에서『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 동안 절기를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심히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여덟째 날에 무리가 한 성회를 여니라 제단의 낙성식을 칠 일 동안 행한 후 이 절기를 칠 일 동안 지키니라』이 절기가 바로 초막절이다. 요한복음 7장 37-38절『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같은 초막절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될 때, 영원한 생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느헤미야 8장 1-2절에서『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이 때, 성전이 재건되지 않았으므로, 제사장이 없었으며, 학사가 대신하였고, 언약궤가 없었으므로, 율법책이 대신했다. 일곱째 달 초하루가 바로 초막절이었다. 이는 솔로몬 성전을 준비하는 역대하 7장의 모습과 동일하다.
느헤미야 8장 17-18절에서『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이스라엘 자손 중, 초막절을 지킨 자는 거의 없었지만, 가장 초라한 상태에서 느헤미아는 이같이 행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각종 행사를 한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으므로, 이제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므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도 없는 절기를 만들어서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구원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초막절에 대해 깊은 묵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자기를 부인하고, 옛사람이 죽어,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자의 초막절에 임하신 구원의 성령의 불이 환하게 밝혀질 것이다. 어둠에 있던 자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죄를 통애하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될 때, 죄가 그치고, 하늘의 빛이 거듭난 자에게 임할 것이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 가장 선행된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앞장 선다면, 비록 우리의 상태가 초라할지라도,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전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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