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하심을 얻는 믿음
로마서 10장 6-9절『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받은 자』는 육적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육적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는 현실적인 상황을 토대로『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예수님의 피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명기(30장 11-14절)의 말씀을 인용한 이 말씀은『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이 인용했다. 광야에 나온지 40년째 11월을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다. 40년 전에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존재,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지만, 40년이 지난 후에 모압 땅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시내산의 언약과는 다르다는 것을 신명기 29장부터 말해준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고,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므리바에서 물을 내라고 하신 명령이 믿지 못하므로 순종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믿지 아니하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하는 자가 되었다. 모세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모세가 죽기 전에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백성들을 향해서『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말하는 것이다.『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어린양의 피를 칠하여 애굽으로 부터 나올 때의 믿음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갈 때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애굽으로 부터 출애굽할 때의 믿음과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의 믿음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가? 바로 옛사람이다. 출애굽할 때의 옛사람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것이다. 가나안에는 새사람만 들어갔다.
오늘날도 예수와 함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야만 새사람이 되어서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이게 회개의 시작이고 결과이다. 회개는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회개한 자의 예표가 된다. 옛사람은 광야에서 죽은 것처럼, 모세도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죽음을 받아드리는 자만 회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달린 자가 되지 않으면, 회개한 적이 없는 자가 된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는 주님은 항상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주님은 용서하지 않는다. 옛사람이 죽은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의롭다 칭하기까지 하신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고만 생각한다. 여전히 광야에 머무는 자가 되어있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옛사람은 반드시 죽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출애굽한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다. 백성들은 언약을 믿지 않았으므로 심판당한 것이다.
옛언약은 율법으로 하여금 백성들이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므로 율법에 따라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 새언약,『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다.『말씀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새사람은 지킬 수 있다고 하는데, 옛사람은 지킬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명기 14장 30절에서『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무엇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인가?『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언뜻 보기에도 쉽데 느껴진다.『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됨을 포기하는 것이다. 정말 마음에 믿는 것인가?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일치해야만 한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야만 한다. 마음이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되는 것이지, 마음으로 결정하게 되면 쉽다는 것이다. 문제는 마음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자는 그 마음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옛사람의 죽음을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세상에 있어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의롭다하심을 얻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마음의 결정에 대해서는 관심없고,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교회에서도『당신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의롭게 되었다』 라고 선언해버린다. 불법을 저지러고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받은 자』는 모세처럼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해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오늘날 여전히 율법적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로마서 7장 6절에서『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날마다 죽지 않으면 율법이 우리를 죄인으로 인식하게 된다.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옛사람이 죽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옛사람(죄성)이 살아나지 않도록 싸워 이겨야만 한다.『거듭나도 죄성은 죽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율법이 그들을 죄인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래서 땅 아래로 내려가신 주님을 올라오게 하고, 하늘에 올라가신 주님을 내려오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한번으로 족하다. 회개없는 믿음은 거듭나지 않은 믿음이다. 구원받지 못한다. 육의 생각, 경험으로 판단하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여 영의 마음으로 받아드려야만 한다.『가나안에 들어가면 산다』고 믿었던 사람은 이방인중에서 오직 한사람, 갈렙만 믿고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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