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나온 인간의 첫죄, 원망죄


하나님이 애굽에서 부르짖는 백성들을 건져내기 위해 모세를 택하고, 모세로 하여금 바로왕에게『하나님의 명하신 바 사흘길을 간 후에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도록 했다. 그런데 바로왕은 여기서 제사를 하라고 했지만, 모세는 거절했다. 그리고 열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리고, 히브리 백성은 애굽을 나와 홍해바다를 건너 사흘길을 갔다. 그런데 사흘길을 갔지난 물이 없어서 거의 죽게 되었다. 성경에서 사흘은 육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 히브리 백성의 사흘 길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는 안중에도 없고, 물이 없으므로 모세를 원망하는 것이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도 다 그들의 마음에는 물 때문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출애굽기 15장 22-25절에서『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여기에서 한 나무가 등장한다.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들어갔을 때, 쓴물이 단물이 된 것처럼, 어둠 속에 있던 자가, 성령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십자가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든 인간은 아무도 마실 수 없는 쓴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사흘길을 지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를 받기를 원했지만, 백성들은 그들의 인도자 모세를 원망했다. 그리고 모세는 부르짖어, 쓴물이 단물로 변했다. 이 생명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육이 반응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했지만, 그들의 눈은 아낙자손에 반응한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삼일 길이 죽음의 길이 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자는 비록 육은 죽을만큼 고통스럽지만, 삼일 길이 생명의 길이 되는 것이다. 회개없는 삼일 길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길이다. 

출애굽기 15장 27절에서『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하나님은 엘림에서 물을 예비해 두었지만 직전에 그들은 물이 없어서 원망한 것을 본다. 회개하지 않는 자가 발견하는 곳은 마라의 물이지만 하나님은 엘림의 물, 열두 샘을 예비해주셨다. 히브리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로 나왔으나, 마실 물 때문에 마라에서 모세를 원망했고, 엘림을 떠나 신 광야에 나와서는 출애굽기 16장 3-4절에서는 먹을 것 때문에 히브리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출애굽한지 한 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맛나가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아침에는 떡으로, 저녁에는 고기로 배부르게 먹었다. 그런데 17장에서도 마실 물 때문에 이번에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출애굽기 17장 1-2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아무리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기적을 체험하게 해 주어도, 육체가 요구하는 의식주 앞에서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에덴동산을 주어도, 탐욕이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는 것이 인간들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는 자들은 육체의 욕구와 내적 탐욕으로 인해서 넘어지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의 여정을 통해서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육신이 반응하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있는 신도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원망죄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육적인 것은 죽어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광야에서 히브리 백성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격발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노의 자녀가 된다. 이 일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인도된 후에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애굽에서의 죄는 언급하지도 않는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홍해바다를 건넌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에 도달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여 애굽으로부터 광야로 나온 백성들이 회개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교회로 인도되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흘길의 의미를 깨닫고, 육은 반드시 죽어야만 새생명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회개는 죽는 것이며,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아무리 이웃을 위해 선행을 하고, 불사르는 일에 자기 몸을 내어줄지라도, 어둠에 처한 영혼을 구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회개하지 않는 삶이 된다.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회개하지 않고, 옛사람으로 살다가 죽은 것처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내 경험과 판단과 감정으로 살아간다면, 광야에서 죽어간 옛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보고 배워도, 내 판단대로 살아간다면, 이게 자기가 우상인 것이다. 회개는 자신 속에 있는 우상을 발견하고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자신 속에 있는 우상들은 무엇인가? 탐욕이 바탕이 되어,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주님은『너희는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할 것이다. 그런데 모두는『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것이다. 그 결과는 삶의 열매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마태복음 7장 16-21절에서『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