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군대
출애굽기 14장 13-15절『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출애굽한 백성들은 진퇴양난이었다. 앞은 홍해바다가 가로막히고, 뒤에는 애굽의 병사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다.『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직접 싸워 주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히브리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바로의 군사들은 물에 수장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갔을 때, 아말렉과 전쟁을 했다. 40년의 광야생활 속에서 단 한번의 전쟁이었다. 이 때,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면서 두 팔을 들고 있으면, 여호수아가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모세의 팔이 내려가면 지는 그런 전쟁이었다. 이때의 전쟁은 모세가 두팔을 든 기도로 적을 무찌르는 모양이었다. 기도를 하면 이기고, 기도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에 먼저 들어가서 정탐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가나안에는 아낙자손이 살고 있었다.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의지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생각하고, 통곡하면서 울었다. 아낙자손은 거인들이었으며, 철병거가 있었다. 히브리 백성들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적이었다.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했다. 가나안에는 두 정탐꾼과 아이들,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이 들어갔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아이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세번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애굽을 나올 때와 홍해바다를 건널 때 까지는 하나님이 친히 싸우셨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는 모세가 기도하여 손을 들고 있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이 상황은 여호사밧 왕 때와 같다. 전쟁이 발생하여 적이 처들어오는데, 하나님이 먼저 예배하라고 말씀하셨다. 예배할 때, 하나님이 복병을 일으켜서 적을 무찔렀다는 것이다. 가나안에서는『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다윗은『주님이 내 발에 힘을 주셔서 싸우게 했다』고 고백했다. 가나안에서는『하나님이 백성들을 통하여 이기시겠다』는 것이다. 가나안에서 적과의 승리를 위해서는 백성들의 전적인 순종이 필요하다. 가나안에서 이렇게 순종을 통하여 적을 무찌르는 이유는 백성들을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전쟁은 세가지 유형인 것을 보았다.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적을 이기는 여러 과정들이 있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역사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새사람 안에 역사하시기 때문이었다. 가나안에서의 전쟁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 때, 블레셋에 노예생활을 했다.
애굽에서 나올 때는 적이 뒤에 있었다. 그래서 도망가기만 하면 되는것이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적이 앞에 있었다. 오늘날 가나안은 어디인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뒤따른다. 가정과 직장 속에서 가나안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적과의 싸움에서『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아낙자손과 같은 거대한 힘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때 믿음이 필요하다.
구원에 대해서 히브리서 4장 1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능력과 큰 확신으로 임하라』고 말한다. 빌립보서에서는『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다. 구원의 표현이 다르다.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구원을 바라보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순종하지 못하면 광야에 있는 히브리 백성과도 같은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광야교회가 되는가 아니면 가나안 교회가 되는가? 광야는 파종할 수 없는 땅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맛나로 겨우 살아가는 것이다. 가나안에서는 수장절이 있었던 만큼, 수확해서 저장하고 살았다. 풍성한 삶이다.
출애굽기 7장에서 4절에서『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히브리 백성들이 바로의 노예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내 군대라』고 말씀하신다. 출애굽기 12장 41절에서『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하나님은 그들을『여호와의 군대』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렸는가? 군대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광야교회 소속이 된다. 군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나안에서 적들과 싸우는 것이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도가 되지 않으면, 결국 모세의 팔이 내려갈 때, 적들에게 패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광야가 있으며, 가나안이 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믿음은 열매가 없는 믿음이 된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풍성한 열매가 맺는다. 열매가 맺기 위해서는 수많은 싸움을 거치는 것이다. 열매는 이기는 자의 것이다. 비록 가나안에 들어갔어도 우리 힘으로 적을 이길 수 없다.
우리의 영적 정체성은 어느 상황에 놓여있는가를 살펴야만 한다. 바로왕처럼,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는지, 애굽을 나왔지만 여전히 광야에서 머물고 있는지,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순종하여 이기는 전쟁을 하고 있는지?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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