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의 의미


누가복음 16장 13절『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재물이 우상임을 말한다. 히브리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 나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신 것을 알았다. 그 하나님은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렸으며, 백성들을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산으로 올라가 40일 동안 있으면서,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 판을 받았다. 그런데 시내산 아래에 있던 백성들은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알면서도 그들은 재물의 신을 만들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있게 된 것도 재물이 원인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셨고, 이삭을 거쳐 야곱에 족장으로 있을 때, 온 땅이 가뭄으로 인해서 식량으로 구하러 애굽으로 갔다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나, 약속의 땅을 등지고,  애굽에 눌러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는 히브리인들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되었고, 아예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애굽은 세상의 재물을 상징한다. 그런데 히브리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의 고통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오늘날 재물의 노예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이 과연 있겠는가? 회개의 시작은 출애굽이다. 출애굽은 재물인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부르짖음의 결과였다. 오늘날 교회에 앉아있으면서도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출애굽 하지 않은 여전히 노예상태에 살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거짓된 구원의 부드러운 소리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회개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 네가지 밭의 비유를 하셨다. 세가지 밭(길가, 돌짝, 가시덤불)은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말씀이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밭은 말씀이 생명이 되어, 자라서 많은 열매를 얻게 된다는 그런 말씀이다. 회개하는 자는 좋은 밭이다. 따라서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밭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밭의 상태가 처음부터 이렇게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밭의 상태는 밭을 갈았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밭을 간다』는 것은 바로 회개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회개는 굳은 마음을 부수는 것이다. 돌과 가시떨기를 제거하고, 밭을 갈아버리는 것이다. 가시떨기는 좋은 나무보다 더 빨리 자란다.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도 염려가 더 빨리 커지는 이유다. 회개는 『자기』라는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왜『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없다』고 말씀하셨는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자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없어지고, 그리스도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는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장사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신다. 

과거 영국은 유럽 중에서도 부유한 나라가 되고, 많은 선교사들이 외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영국은 선교사가 나간 나라들을 탐냈다. 아프리카, 아시아를 식민지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에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 라는 선교사가 파송되었는데, 그는 내지선교회를 설립하였고, 아내와 자식들이 죽는 고통 속에서도 선교에 헌신했다. 그러나 중국 땅에 세운 회사가 있있는데,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가 소속된 회사가 중국 땅을 식민지하려고, 마약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영국 선교의 수치가 되었다. 영국은 돌짝밭이 되었고, 오늘날 영국의 기독교가 소수로 전락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런던시장은 강경 모슬림이고, 런던 시의 40%는 이슬람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정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사제들의 옷은 금으로 되어 있었고, 그들이 차를 마실 때 사용한 잔도 금으로 만들어졌다. 사제들은 짜르 황제와 연합되어서, 가난한 인민들을 착취하는 도구로 전락되고 말았다. 가난한 인민들은 공산주의에 도취하게 된 것이다. 

계시록에서 사탄은 자기의 때가 다 되어갈 때에 우상에게 절하도록 한다. 짐승과 음녀의 등장이다. 짐승은 금송아지를 나타낸다. 오늘날 우상은 재물일 것이다. 모든 것이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언약과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다. 인간이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재물에 의해, 하나님을 버릴 것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 만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재물 앞에서 하나님을 버릴 것이다. 이게 탕자의 비유다.

탕자는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에게 모든 자기의 몫을 달라고 했으며, 아버지가 준 재물을 가지고 결국 아버지를 떠나고 말았다. 이게 구원받지 못하는 자의 모습이다. 탕자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야 제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아들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탕자의 비유를 하면서, 하나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다 받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잘못에 대해서는 넘어가지 않으신다. 회개는 이전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것이 죽는 것이다. 환골탈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이전의 잘못된 것은 개선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재물은 그 재물 만큼이나 근심도 쌓인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돈은 많고 적음이 아니라, 탐심에 묶여 있는 돈이 문제다. 몇 만원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그런 사건들이 발생한다. 탐심은 바로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이 사랑하셔서 말을 했지만, 예수를 떠나가 버렸다. 그는 영생을 얻는 길을 알고자 하여 예수께로 찾아왔지만, 그러나 그는 예수를 떠나가 버렸다. 탐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준다. 탐심을 버리는 것이 회개다. 회개는 아무리 지적으로 동의를 한다고 해도,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미래에 666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하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는데,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아무리 표를 받지 않겠다고 지적인 동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다 표를 받는다는 것이다. 

출애굽은 구원의 시작에 불과하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 많은 어려운 일들이 펼쳐진다. 홍해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야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출애굽했다고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홍해바다를 건너, 세상과 단절하지만, 광야에서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밟아야만 한다. 히브리서 4장 1절에서는『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구원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여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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