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


베드로전서 1장 3-4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가 카타콤(갑바도기아)에서 살고 있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한 내용이다.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산에서 동굴을 파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없다. 베드로도 예수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었다. 회개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죄인의 모습이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죽으셨는가?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으로 죽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다. 회개하는 인간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가? 이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회개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2-14절에서『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특히 15장 14절에서『Nevertheless death reigned from Adam to Moses, even over them that had not sinned after the similitude of Adam's transgression, who is the figure of him that was to come.』(kjv) 아담의 전가된 죄는 원죄(악)를 말한다. 

죄라는 것은 권위있는 법이나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 죄다.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는 율법(하나님의 진노의 법)이 없었다. 그래서 율법이 없었으므로『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율법이 있기 전, 노아시대를 보면, 하나님이 인간의 악함을 보고 분노하시어, 물로서 심판하셨다. 말하자면 죄 이전에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악이 있는 존재는 사망이 왕노릇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악은 탐욕이다.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를 통해서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짓는 악에 대해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악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회개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날마다 죄를 짓고 죄에 대해서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했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은 악이 죽어야만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악으로부터 스스로 돌아설 수 없는 존재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 만이 악으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악이 바로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오는 죄성이다.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오실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모형이라는 것은 원형의 축소판을 말한다.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아담을 통하여 모든 인간들이 죽은 자가 되었듯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간들이 또한 죽은 자가 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5-16절에서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는 같은 죄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아담은 악의 전가자로 후대에 죽음(영적 죽음)을 전해주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악의 해결자로서 회개하는 자에게 죽음(육적 죽음)을 전해주었다. 

고린도전서 15장 45-47절에서『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특히 고린도전서(15장 45절)에서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kjv)  우리말 성경에서『생령되었다』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kjv는『살아있는 혼』이라고 표현하였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처럼 아담은 이 세상에서 혼적인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다. 즉 영이 죽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번역을 조정해보면『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영이 죽은 자가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그래서 아담은 신령한 사람이 아니고,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이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혼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수 있다. 혼적인 존재란 영이 죽어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회개는 바로 이런 사실에 대해서 하는 것이다. 어둠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슬픔과 비애를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만 한다.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에서 갇혀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죄를 묻지 않으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었던 자에게 먼저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해서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죄인들은 악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죄만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를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 그래서 영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현실적 생활이 어렵더라도,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갑바도기아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하여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가 바로『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다시 태어난 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간직한 자가 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