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부활하게 하심이 거듭남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회개하는자가 2000년 전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보다 훨씬 이전의 사람들은 미래에 오실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한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구원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물은 옛사람의 죽음을 나타낸다. 육의 몸을 부인하고, 영의 몸을 입으라는 말씀이다. 거듭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오직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였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모두 이 땅에서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게 거듭남이다. 이 거듭남은 예수님 이전의 에녹이나 엘리야도 마찬가지이고,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로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1장 23-2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마르다의 오라버니가 죽었는데, 예수님은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부활과는 다른 소생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부활은 영의 몸이지만, 소생은 죽기 전의 몸과 같기 때문이다. 소생은 죽기 전의 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육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체는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의 몸이다. 마르다는 죽어서 믿는 자는 부활할 것을 믿었지만, 예수님은 살아있을 때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창조라고 말한다.
오늘날 부활에 대해서 육체가 죽어도 그 육체가 그대로 살아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받은 육을 소중히 생각한다. 물론 이 세상에 살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그대로 부활한다고 믿어서 잘 관리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영의 부활을 말씀하신다.『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예수님은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과 대화에서 상세하게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2장 30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은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 부활의 몸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고 말했다.
부활은 썩지 아니할 몸을 입는다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 영의 몸은 이 땅에서 육의 몸이 죽을 때까지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그런데, 육의 몸이 죽을 때, 또는 육의 몸이 살아있을 때라도 갑자기 변화를 받을 때(휴거), 영의 몸은 예수님의 부활의 몸처럼 역사하게 된다. 결국 거듭나는 것은 육의 몸이 예수님과 함께 죽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또는 예수를 영접하기 때문이 아니라, 회개하여 죄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을 때 일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시다.
부활의 생명은 다시는 죽지 않는 놀라운 영의 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어서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여러 번 말씀했다. 무덤을 지키는 자들도 그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자들은 아무도 믿지 못했다. 믿을 능력조차 없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만나기 전에는 믿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죽어서 부활하신 이유는 이 땅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거듭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거듭난 자는 하늘에서만 있는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베드로가 편지를 쓴 대상은 갑바도기아의 토굴에서 살고 있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다. 그러나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산 소망이 되었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도 현실적 삶이 어려운 경우를 당하더라도, 산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감추어진 거듭난 삶일 것이다. 거듭난 삶은 이 세상에서 삶의 태도를 바꾸거나,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부모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 예로 아이가 태어났는데, 병원의 실수로 부모가 바뀌었다고 가정을 했을 때, 한 아이가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자신의 친 부모를 찾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영은 원래는 하나님이 아버지였으나,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 사탄이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잊어버린채 살다가, 아버지가 바뀌었다는 것을 우연히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때문인가? 아니면 속인 사탄의 책임인가? 아니면, 육의 몸 속에 있는 영이 어떤 죄를 저질러서 그렇게 되었는가? 신명기 24장 16절에서 『아비는 그 자식들로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자였음을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다시 부를 수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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