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
로마서 1장 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기록된 바』는 하박국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박국 1장 에서 하박국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없었다.『하나님 말씀을 따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하박국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어떻게 의인이 어려운 생활을 하게되고, 죄인은 형통하게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는『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답을 얻게 된다. 3장에서는 전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창자가 떨린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박국은『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말했다. (하박국 3장 17-18절)
구원에 들어선 자는 세상의 상황에 따라 애통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고 애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났던 죄로 애통하는 것이다. 죄의 근본은 이 세상에서 짓는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해야만 한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마치 해바라기와 해와의 관계와 유사하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아야 살 수 있지만, 해를 보지 않고 있기에 죽은 자와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출애굽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 백성들의 장자를 살리기 위해 어린양들이 대신 죽었다. 히브리 백성들은 어린양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었다. 출애굽하자 말자, 홍해바다가 가로막혔다. 애굽의 군대는 뒤쫒아왔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홍해바다가 갈라졌다. 그리고 히브리 백성들은 바다를 건넜지만, 바로왕의 군대는 홍해바다에서 수장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다. 히브리 백성들은 홍해바다의 기적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맛나를 먹었고, 불기등과 구름기둥이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마실 물과 먹을 음식에 대해서 하나님을 원망했으며, 애굽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가나안 땅 앞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정탐꾼 열두명 중에 열명이『들어가면 죽는다』라고 하는 말을 모든 백성들이 다 믿고, 통곡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아낙자손 사이에서, 아낙자손을 더 두렵게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기적을 보여주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시고, 아낙자손은 눈으로 보이는 실체이기 때문에 육의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아무리 영의 몸이 있다고 말해도, 육이 반응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맹세하셨다. 민수기 14장 10-12절에서『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수기 14장 30절에서『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당시 히브리 백성의 인구가 약 200만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자가 60만이었으므로, 여자와 아이들을 다 고려하면 200만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두명만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노아의 방주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인구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없지만, 8명만 방주에 들어갔다. 한자의 배(船: 우리말로 선)를 보면, 배를 의미하는 舟(주), 여덟이라는 八(팔), 사람을 의미하는 口(식구의 구) 라는 세 글자가 모여서 하나의 뜻을 나타낸다. 이『배』라는 한자의 모습이 방주와 너무나 같은 모습이다. 이 한자 속에서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노아의 방주를 표현하고자 했을 것 같다.
하나님이『믿지 못하는 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맹세하셨다. 오늘날,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구원받는다고 말씀해도, 믿을 자는 얼마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육의 몸을 부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육으로 반응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히브리 백성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믿음은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히브리서 3장 16-19절에서『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순종하지 아니하는 자가 믿지 아니하므로, 믿음은 곧 순종과 연결된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출애굽 당시, 히브리 백성들이 장자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대문에 양의 피를 칠한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에서 중간 과정이 있는 것이다. 어린양은 대속을 위해 죽었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는데, 구원의 결실인 순종이 없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애굽은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나왔지만, 가나안은 순종하지 못하므로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의 대속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믿지만, 순종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 순종 안에는『내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포함된다. 예수와 함께 죽는『나』라는 존재는 바로 육의 몸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대신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출애굽을 의미하나,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낸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예수와 함께 죽지 않는 자도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홍해바다는 애굽의 병사가 죽은 곳이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벗어난것이 된다. 그러나 요단강은 예수와 함께 죽은 곳이 된다. 구원의 핵심은 옛사람이 죽어야만 된다. 옛사람이 바로 육의 몸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옛사람은 죽고, 새생명이 태어났다. 그래서 새생명들이 가나안에 들어갔다. 이것을 로마서(6장 3-5절)에서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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