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미치지 못하는 믿음


창세기 17장 16-18절『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갔는데, 99세의 상황은 믿음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은『자기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 상황을 통해서 변한다는 것을 말해준다.『자기가 믿는 믿음』과『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서로 다른 믿음이다.『자기가 믿는 믿음』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반응하는 믿음이지만『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다시 태어난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부모로 받은 육이 반응하는 것은 혈연이 작동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찾아왔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자,『이 말은 정말 어렵도다』라고 말하면서 대부분 예수님을 떠나갔다. 구원은 육의 혈연관계가 아니라, 예수님과 혈연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예수님과 혈연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그의 피를 마시는 자가 혈연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그의 피를 마시는 자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행적을 그대로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음, 부활, 승천이다. 이게 피의 새언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활과 승천은 원하는데,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연합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기는 하지만, 함께 죽지는 않는 것이다. 자기의 주인됨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두 제자들이 그러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예수를 떠나갔다. 구원은 오직 하나 이 세상에서 십자가와 연합되는 삶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해서 죽을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이 죽을 때까지 오직 그 이상을 붙잡아서는 안된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다. 육적 주인됨을 내려놓을 때 새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육적 주인됨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그의 가족이 되지 않는다.『육적 주인됨』과『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사이에는 자기 만의 영역을 세우려는 의도가 있다. 이 의도를 갖게하는 것이 탐욕이요, 옛사람이고, 인간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들이 죽어야만 의롭다 하심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99세가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셨다. 다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을 때는 육이 반응할 수 없는 상황까지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회개하지 않을 때는 욥의 상황까지 갈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은혜받은 자의 모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육에 반응하는 자들은 사탄에 속고 있는 셈이다. 칭의는 되었는데, 성화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뿌려놓은 자기 속에 숨어있는 탐욕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믿음은 자기 속의 탐욕을 내려놓고 하늘로부터 받는 믿음이 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은 와야만 한다고 말한다. 믿음이 하늘로부터 오지 않고 내가 믿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그런데 수많은 교회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왔는가 아닌가의 차이는『누가 주인인가』의 차이다.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가 쪼개지지 않으면,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쪼개지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내 속에 있는 죄성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붙잡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쪼개지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쪼개짐은 나의 주인됨을 포기하는 일이다. 나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쪼개지지 않으면 새언약에 들어가는 자가 아닌 것이다. 죽어야만 산다고 하는데, 여전히 죽지 않는 모습을 본다. 믿기는 하지만, 죄성은 절대 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대신, 자신의 경험과 상황에 대한 판단을 먼저 생각하고, 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피의 언약으로 들어오라고 하는데, 말로는 들어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들어가지 않은 모습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면 언약에 참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 일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지 말라는 세상은 육의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나 가정에서의 자녀 문제나 모두 세상에 묶여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하는 말은 비현실적인 말처럼 들린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를 해도 세상의 부와 물질이 더 좋은 것이다. 이게 육이 반응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면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다. 그런 생활에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다. 어느 길을 가야만 하는가? 그러나 많은 교회 사람들은 편리한 방법을 택한다. 예수의 피를 통해서 죄 용서를 받는 것을 회개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다 회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으면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다. 돌이키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다 회개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게 거짓된 믿음이다. 택하신 자의 믿음이 아닌 것이다. 택하신 자의 믿음은 돌이키는 것이다. 세상에서 죽은 자같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매일 매일 싸우는 것이다. 

어쩌면 75세의 아브람과 약속의 자녀를 얻는 100세의 아브라함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스마엘을 낳은 아브람의 믿음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가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 영의 마음으로 사는가 아니면 육의 마음으로 사는가? 영의 마음으로 사는 자가 구원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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