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10장34-39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라고 말하는데,『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사야서 9장 6절에서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평강의 왕이라 했다. 그런데 검을 주러 오셨다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예를 들어 가정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섞여 있어서 불화가 생긴다는 말로 해석하고 말한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100% 그런 가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완전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믿는다고 하는 교회 내에서도 불화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율법 아래에서 죄인들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예수님이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죄인을 구하러 오신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셨는데, 세상에서 평화와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평화를 중재하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이다. 즉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 사이에서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다. 원수된 관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위해서 오심으로 평화의 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세상에는 불화가 된다. 

예수님이 검을 주시러 왔다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다. 검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이방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화는 싸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죄를 지고 가시면서『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는데,『하나님이 십자가의 나(예수)로 말미암아 율법을 다 이루어 주셨다』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에 가면 하나님 말씀(율법)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부터 분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화인 것이다. 이 말씀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가졌는데,『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다 이루었다는 말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누어진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검을 주러왔다는 말로 표현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되어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사울이라는 자가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를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도바울은 세상과 원수가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여전히 율법을 따르고 있는 자들이 대다수이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나, 오늘날 사도바울이 성경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의미를 많은 교회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님이『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제 각각 해석하고 편안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세상죄를 다 가져갔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날마다 율법에 비추어서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지 살펴보고 날마다 회개해야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옛사람의 모습이다. 옛사람은 죽어야 한다.(로마서 6장 6절) 거듭난 자는 옛사람이 죽은 자다. 옛사람이 죽은 자는 하늘로 부터 성령으로 태어난 영의 몸을 가진 새사람이다. 성령으로 난 자는 로마서 8장 1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 3장 14-16절에서『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라고 했다. 구약은 율법을 말한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도, 구약을 읽을 때 예수님이 이루신 의미에 대해 수건이 가려져서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예수님이『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았으니 우리도 고난에 동참하자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세상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과 분리를 의미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세상에 대해서 죽어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6장 6절의 의미와 같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리고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너희는 유혹의 욕심에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리고』, 로마서 8장 7절에서는『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육체의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세상을 버리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자신은 예수님을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모른다』라고 할 자이다. 그리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율법에 얽매여 있는 자도 하나님의 검을 받지 못한 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루신 율법의 완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와 더불어 율법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으면, 검에 의해 예수와 분리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서 벗어난 자요, 이 세상과 분리된 자이다. 이런 자에 대해서 성경은 말한다. 

요한1서 5장 18절에『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 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세상에 대해여, 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는 자만이 하나님께로 난 자가 될 수 있다.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세상과 분리되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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