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사탄으로 부터 시험을 받으셨는가(1)
마태복음 4장 1-10절에서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이 왜 예수님을 시험했는가? 예수님은 시험받아야만 하는가?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인자이시다.『그래서 성령이 충만하셔야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예수님의 시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들도 동일한 시험을 받게 되는 것을 알려주신다.『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방황했던 곳이 광야다. 광야는 물이 없는 곳이다. 광야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40년간 방황한 이유는 가나안 땅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정탐하러 간 열두명이 40일간 정탐했는데, 열명이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1년을 하루로 계산해서, 40일간 정탐기간을 40년간으로 계산해서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40일간 굶주린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한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굶주리신 40일간(광야의 40년간)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의 세상에서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명의 양식이 없었던 것 처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다시 오실 마지막 때는,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에서『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있지만, 말씀을 먹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모스 8장 11-12절에서『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예수님이 40일간 굶주린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굶주린다는 것이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만 모두 굶주리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맛나가 있었음에도, 먹을 고기가 없다고 불평한 것이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은 것이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목적은 십자가에서의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율법이 있으므로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건물 성전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탄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자기에게 주었으므로, 이 세상은 자기 왕국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이루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사탄의 시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율법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이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성전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세상의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세가지를 말한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자에게 사탄의 권모술수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사탄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주의 기도문을 통해서도 알려주신다.
광야에서는 생명의 물이 없다. 율법이 생명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물이 없게 된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는다 라고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율법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생명의 물이 없게되는 것이다. 수많은 교회 사람들이 사탄의 속임에 빠져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돌(율법)을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을 마음의 변화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거듭남은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쎄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에 비추어서 자신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고,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행동한다. 생명의 말씀이 없는 현상이다. 우리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하지만, 거듭난 자가 성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교회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오도록 유도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건물 성전에서 내려오면 여전히 성전 건물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적을 좋아한다. 사탄은 이를 이용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지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나의 표적을 통해서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기적을 믿는 자들은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사탄은 할 수만 있다면, 이적을 일으켜서 택한 자도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하시므로, 인간들도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요한1서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세상은 사탄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 사람들조차 세상의 것을 구하고 있다. 마귀가 세번째 시험한 것도 이와 같은 내용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