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2)


④『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예수님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은『세상에서 무엇을 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해야 될 것은『창세 때 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있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단순한 신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다』라고 말은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식의『전지전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는데,『하나님이 전지전능 하시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려고 했는데, 사탄이 개입되고,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서 세상이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을『전지전능 하신 분』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이 어떤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전지전능으로 말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전지전능』에 대해서 정말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이 세상의 모든 것이 완전하고 복되게 창조하셨다』고 믿으면서, 어쩔 수 없이『이 세상을 파멸시켜야 된다』라고 아무런 느낌도 없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만이 선하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도 부자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말씀하고 있다.『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그런데 사람들은『하나님이 선과 악을 판단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은 전부 악하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분으로 생각하므로서, 악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관여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악을 판단한다』는 것은 악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악을 안다(야다)라는 말은『경험적으로 안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악이 없다.『하나님을 떠나는 것 자체』가 악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도 있고, 악도 있어서, 그것을 판단하는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악은 하나님을 떠난 사탄이다. 사탄을 따르는 것이 악인 것이다. 하나님이 악을 판단해서 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악인 것이다.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는 사람이라』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하나님의 절대 선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천지창조를『창조에서 종말까지를 하나의 계획과 섭리로서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탄의 개입이나 인간의 잘못으로 하나님의 창조가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늘에서 이룬 뜻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6장 40절에『아들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라 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는『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하나님의 뜻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마다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뜻이『창세 전에 이미 세워졌다』라는 말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를 위해서 이 뜻을 세운 것이 아니라,『흠이 있고, 거룩하지 못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뜻을 세우셨다. 『흠이 있고, 거룩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말한다. 창세 전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이런 뜻을 세웠겠는가? 창세 후에 발생할 일에 대해서『다 아시고 이런 뜻을 세웠다』고 말한다면,『하나님의 창조가 완전하지 못하고 변형될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컷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한 일은 창세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창세 전에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창조 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해서 하나님의 뜻을 세웠다는 말이 논리에 맞는가? 하나님이 창조 후에 인간이 타락할 일을 미리 다 알고 계셨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는 일을 왜 그대로 두셨는가? 하나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 수없이 많은 자들이 지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타락할 일을 미리 아셨더라면 사랑의 하나님은 타락하게 하지 않도록 바꾸면 될 것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완전한 선의 하나님이라』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다 구원하시려는 뜻을 언제 세우셨는가? 창세 전이라는 말은 영원이라는 말이다. 영원이라는 의미를 인간들은『끝없는 시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생각은 이것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 안에서는 영원을 이해할 수 없게된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세계는 영원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세계를 바탕으로 영원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물질세계는 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은『세상에, 흑암에 갇힌 자를 구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흑암에 갇힌 자가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이다. 자기의 지체가 왜 흑암에 있는가? 

요한복음 1장 9절에서『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장 5절에는『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어두움과 창세기 1장 2절에서 말하는 어두움은 같은 뜻이다.『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빛이 없었기 때문에 어두움 가운데서 빛이 비추어진 것이다. 흑암에 빛을 비추어 주신 것 처럼, 흑암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춰진 것은 흑암 가운데 예수님이 오신 것을 말한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흑암은 세상의 흑암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이 흑암인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⑤『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하나님 나라 생명의 양식을 달라』는 말이다. 오늘날 대개『일용할 양식』이라 함은 매일 먹는 육적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는『목숨을 위하여 먹을 것인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누가복음 12장 29절에도 예수님이『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라고 하셨다.『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기 위해 생명의 양식이 필요하다』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도 같은 말씀이다.『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생명 양식(떡)은 영원한 언약(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언약)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서 줄 때『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시고, 또 잔을 주시면서『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라』고 하셨다. 새언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원한 언약이다. 영원한 언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하신 언약이요, 약속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떡은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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