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대부분 교회사람들이『예수님을 믿는다』라고 하면서도 율법을 버리면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율법을 이루셨으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 율법에 메여있지는 않지만, 믿음 안에서 강제나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자율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에서 율법에 대해서 표현하기를『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는다』라든가, 예수님이『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라고 말을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율법에 메여있지는 않지만,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율법을 자율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지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의 의를 행하고, 이루어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율법은 무엇인가? 시편에는『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하고 있다. 로마서 7장 10절에는『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이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계명이 되었지만, 본래의 율법은 나에게 생명을 주어야 되는 것인데, 나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말씀이다.『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해서 영혼을 소성케한다』라고 했는데, 완전한 이 계명이『나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고, 하자 없는 계명인데, 하자가 있는 것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만일 내가 원치않는 일을 행하면 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완전한 율법이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이유는 내 안에 있는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율법을 다 이룰 수 없다』라고 하니까 율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처럼 생각을 한다. 

사도바울은 율법과 죄가 있는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율법 아래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전혀 흠이 없고, 의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로마서 7장 9절에서『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했다. 율법으로 열심이었을 때는『자기는 살았고 의인이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율법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나니까(계명이 이르매),『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라는 것이다. 죄가 드러나니까『의인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는 말이다. 사도바울과 같은 율법주의자가 얼마나 율법을 근거로 의롭게 되려고 노력했겠는가, 삶 자체가 율법을 거스려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살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사도바울은『율법이 말하지 않았으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이『사람의 생각,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한 생각들이 인간을 악하게 하는 것이지 먹는 것은 더럽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라는 율법의 규정이 없었다면『내가 탐내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라는 말이다. 사도바울도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도바울이 생각해 보니 자기 속에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탐심이 내 속에 있으므로 욕심이 나를 끌고 내려가서 율법으로 가는 것이다. 율법에『탐내지 말라』라고 했는데, 내가 탐내었으니 죄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죄가 없는 자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율법을 바로 깨닫고 나니까, 『나는 율법 아래에 있는 벗어날 수 없는 율법에 매여있는 죄인이로구나』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탄식하며『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독백하는 것이다.『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이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도바울과 같은 율법의 열심인 사람이 그 율법이 말하는 바를 깨닫고 나니까, 내가 이 율법 아래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그 고백 가운데, 말하고 있는 것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노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교회사람들도 율법적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절대로 이 율법적 기준에서는 완전한 모습이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고 고백하지 않으면, 사도바울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내 스스로 그 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은 말이 나오게 된다. 그런 고백이 나올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즉 율법에서 자유케 하는 생명의 복음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하는 것이다. 로마서 7장과 8장은 사도바울이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죄 때문에 율법으로는 절대 의롭게 될 수 없는 상황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해방이 된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7-8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율법 아래, 즉 죄 안에서 구원하시는 데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율법에는 하자가 없고 인간에게 하자가 있다. 『육체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은『하나님을 떠났다』라는 말이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에서『몸에 있을 때에는 주와 떨어져 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말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죄가 인간의 육체와 함께 있는 것이다. 육체 가운데 있는 죄를 없게 하려고 하면 죄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말한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서 하나님이 그들을 에덴동산으로부터 내쫒을 때 생명나무의 길을 두루도는 화염검과 천사를 두어서 지키도록 했는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려면 화염검과 천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죄의 몸이 죽어야만 한다. 죄의 몸이 죽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야만 한다. 죄의 몸이 죽는 것은 옛사람(악)이 죽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데, 나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서에서 보면 메시야에 대해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데,『이스라엘이 멸망해서 다 흩어져 있는데,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 불러 모아서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일은 가벼운 일이라는 것이며,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창세기 12장 1-3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내가 너로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상의 모든 죄와 훼방죄를 다 가져가시고 나서, 이제 예수님이 그냥 하나님 나라로 가버리면 예수님이 이루신 일들이 다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시고 또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그것을 전하고 증거해야만 한다. 나를 구원하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천하만민이 구원받도록 해야 하는데, 내가 왜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을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이 되도록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도 라는 미련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나, 인간의 육체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비록 영의 몸으로 거듭났지만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날마다 죄악과 싸우게된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8장 1절에서 설명하고 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고 있다.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영의 몸으로 거듭난 성도들에게 이렇게 확실한 약속을 하고 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