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
누가복음 18장 1-8절에서『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경에서『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잠깐 자는 것과 같다』라고 했으며,『우리 인생이 칠십이요 팔십이라도 일식간에 날라간다』라고도 했다. 그런데 인간들은 마음 속으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심판을 대비하라』는 말인데,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듯하다.『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불의한 재판관 앞에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니, 이 말씀을『하나님께 매달리며 간구하는 기도로』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은『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서 말하고 있다.『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본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본향은『그 곳에 살았다』라는 말인데, 인간의 영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지만, 그런데 본향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실을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본향에 돌아가려면 인간의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면서 레위기 25장 23절에서『토지를 영영히 팔지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함께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서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도 될 수 있고, 이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가나안 땅에 대해서 나그네라 하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왔으므로 애굽이 본향이 된다. 애굽이 고향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니까 이 땅이 나그네라는 것이다. 위의 히브리서 11장 13-16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멀리서 바라보고 자기들이『이 땅에 대해서는 나그네라』고 증거했다. 즉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다 라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떠난 온『갈대아 우르』를 말하는 것이라면 돌아갈 기회라도 있지만 그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애굽도 아니다. 히브리서에는 더 좋은 본향은『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더 좋은』의미는 물질세계인 이 땅이 아니라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인생의 모든 영은 하나님 나라로 부터 와서 잠깐 지내다가 돌아가야 할 나그네 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전도서 12장 7절에 보면『흙은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라고 했다. 육은 땅으로 돌아가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기의 주체를 육으로 비롯된 마음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육으로 비롯된 마음을 옛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 옛사람은 육으로 비롯되어 있으므로, 죽어야만 영이 살아날 수 있다. 하나님이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말이다. 영은 육에 있으면 안되고, 영의 세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육 속에 영이 있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갇혀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옥에 갇혔다』라고 표현한다. 예수님이 에 세상에 오신 목적은『옥에 갇힌 자를 풀어주기 위해서』라 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에서 하나님은『영』이시라고 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 나라에 있다. 인간에게도 영이 있다. 누가복음 8장 55절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다시 살리므로 영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요한복음 6장 63절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영이 죽어있다』죽어있다 라는 말은『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라는 말이다.
인간이 사는 세계를 물질세계라 한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을 만드셨는데, 왜 이 영이 하나님 나라에 있지 않고 물질세계, 흙인 육에 있는가?
즉 육체에 영이 갇혀있는 것이다. 영이 하나님 나라에 있으면 자유롭지만, 영이 흙속에 갇혀있으면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유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영은 육이 죽으면 육체로 부터 나오지만, 이 세상에 살아있을 동안에는 영이 육체로 부터 나오지는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자유를 찾을 수 있는데, 육체로 비롯된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으면, 영이 자유한 것으로 해 주시겠다는 말이다. 영의 마음은 육신으로 비롯된 마음과 다르다.『자기를 부인하야 한다』는 말은 이 육신으로 비롯된 옛사람을 부인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비롯된 옛사람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선을 이루어 보겠다』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영을 흙 속에 넣어 주셔서 인간이 되었다. 영의 입장에서는 이 땅이 나그네라는 말이다. 흙 속에 넣었다는 말은『가두었다』라는 말이다.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서 사도바울이 고백을 하고 있다.『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낙원은 땅에 있는 인간으로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러나 물질세계, 흙으로 된 인간 속에 갇혀있는 영은 흑암 속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불의한 재판과 과부의 비유를 들어서 부르짖으라, 택하신 자의 원한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라고 하셨다. 택하신 자들이 가진 원한은『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인 사탄』이다. 사탄의 자식이 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소원이 되어야 하고,『유혹한 사탄을 책망하고 탄원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의 복을 빌고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하나님 나라에 되돌아 가기 위해서, 사탄을 책망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돌아가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과 함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탄이 뿌려놓은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야만 한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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