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창세기 1장1-5절)
우리가 무엇을 나눈다고 하면, 어떤 전체적인 것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한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는데, 그것을 분리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성립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떠나면 어두움이 온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니까 하나님을 떠난 악은 하나님과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5편 4절에 보면『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니 악과 함께 유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떠난 것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하는데 거기서 빛과 어두움을 나눈게 아니다. 죄악된 물질세계에 하나님이 물리적 빛을 창조해 주셨지만, 여전히 어두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두움을 아직 남겨두신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해 주셨는데, 어두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흑암이 아직 남아있게 하신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없는 상태인 어두움 가운데 창조된 존재들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는데, 인간이 물질세계에 살면서 아주 알기 쉽게 해주셨던 것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무런 의미없이 생각하고, 그냥 빛이 있으니 낮이고, 빛이 없으니 밤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빛을 만들어 주신 것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의 관계를 보면, 빛이 오기 때문에 어두움이 물러간다. 어두움이 물러가기 때문에 빛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두움이 오는 것은 빛이 물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가 다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빛을 보내주는 해가 가므로 어두워지고 그 해가 오므로 밝아지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이 빛의 진리이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셔서 날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은 땅에 있을 동안 즉 물질세계에 있는 동안에 날이라고 하는 시간 가운데 존재하는 동안에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떠난 어두움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어두움을 남겨두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 낮과 밤이 되게 하신 것이다.
평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을 구분해서 인간이 밤에 속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라 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물질세계에 빛이 되어주시더라도, 하나님의 빛은 어두움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스스로 빛을 비춰 주시면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성경을 깊히 알고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이다.『하나님을 떠나 온 기억이 없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되는 것이다.
이사야서 45장 7절에서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나님이 어두움의 창조자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두움이 없다는 거룩한 속성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두움을 어떻게 창조하시는지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빛을 차단시켜 어두움이 되게 했던 것이다. 흑암은 하나님께서 빛을 차단하시기 때문이다. 악을 창조하는 것도 하나님이 선을 공급하시지 않기 때문에 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빛을 차단하여 어두움을 창조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창조하신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셔서, 낮이 있게 하시고 밤이 있게 하셔서 날을 주시고, 날마다 빛이 오고 또 빛이 가고 어두움이 오고 어두움이 가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너희는 지금 하나님을 떠나 어두움 가운데 존재하는 자들이라 고 말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숨이 있는 동안에 본래 어두움 가운데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물질세계에 있는 동안 인간이 날이라는 것이 주어졌을 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달으면 돌아오라는 것이다. 깨닫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참 빛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열심해야 해야 복을 주신다고 하는 그런 미련한 생각을 갖을 것이다.
이 빛과 어두움이라는 진리를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어두움은 스스로를 밝힐 수 없다. 빛을 비춰 주어야만 밝힐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빛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참 빛을 비춰주셨다. 하나님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이고 멸망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행함으로 빛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몸에 베여있는 것이 바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함으로서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날 때에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틴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같이 선하고, 빛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악한 자들을 쫒아내시고, 절대로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빛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빛을 주시고 어둡게 하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고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회개하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을 다시 깊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미완성의 상태로 창조하신 것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만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라 믿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에 대해서 성경에는 많은 표현이 있다. 이사야서 42장 7절에서 『내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메시야에 대해서 예언하는 것인데, 메시야 즉 예수님이 오시면, 소경의 눈을 밝히며 옥에서 이끌어 내신다는 것이다. 이사야서 61장 1절에서도 똑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예수님이 회당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으시고,『오늘날 이 글이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