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산상수훈(1)
마태복음 5장 1-12절에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복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한다. 율법은 모든 인간들이 죄인임을 알려주신다. 그런데,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자가 복이 된다. 복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로마서 3장 19-20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이 알려주시는 것은『너희들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에서『가난하다』는 것은 땅이 없어서 먹고 살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지파별로 기업(땅)을 분배해주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생겼다. 여러가지 이유로 땅을 팔기도 하고 해서, 경작할 땅이 없어지는 경우다. 그래서 하나님이 희년제도를 두어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므로 희년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땅이 없는 가난한 자는 땅을 빼앗긴 것이다. 심령은 영을 말한다. 영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이 집을 빼앗겼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영의 집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영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깨닫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깨닫는 자는 하나님께 회개하여, 영의 몸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거류민(나그네)의 히브리어는『게르』라는 단어다. 모세의 아들의 이름이 게르솜이다.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이다. 정확하게는 외국인이 타국에서 와서 거주하는 자를 말한다. 이스라엘이 기업으로 땅을 받았는데, 기업이라는 말은 약속이다. 그 약속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이 땅(물질세계)에서는 인간들은 나그네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온 나그네라는 것이다. 거류민은 영주권과 같고, 우거하는 자는 임시 체류권을 말한다. 거류민은 이스라엘을 나타내고, 우거하는 자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한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서『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래서 사람들이 돌아갈 곳이 하나님 나라 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 간청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자를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신다. 그래서 회개하여, 부르짖어라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애통하다는 말은 원통해서 통한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는데,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장막을 빼앗기고, 물질세계의 흙 속에 갇혀있는 것을 깨닫고 보니, 너무나 원통하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7절에서『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이 세상에 쫒겨온 자들이 빼앗긴 영의 몸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밤낮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택하신 자들은 이런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탕자의 비유처럼, 죽은 것같이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편 135편 14절에서『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여기에서『위로』라는 말이 출애굽기 32장 14절에서는『돌이키다』라는 말로 표현되었다.『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사건에서, 모세의 간곡한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말씀이다.『돌이키다』라는 말의
헬라어 (파라칼레오)는『파라』(곁으로)와 『칼레오』(위로,격려)라는 말의 합성어로『다시 곁으로 불러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온유하다는 말은『심령이 가난하다』의『가난하다』라는 말과 히브리어에서 같은 단어(아나)를 사용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아나』라는 말은 부자나 권력가들의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상태를 말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민수기 12장 3절에서『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모세가 애굽의 왕자였을 때는 당당했으나, 미디안으로 도망간 후에는 40년 동안 보잘 것 없는 자가 된 것이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가진 것이 없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 땅은 가나안 땅이다. 기업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장차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약속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 사탄에게 속아서 이 땅에 쫒겨와서 살고 있다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은 이 땅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겸손함으로 온유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약속받는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복이 배부르게 된다는 것이다.『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서 의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를 받아야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 방법은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서 함께 죽을 때, 하나님께서 의를 주신다.『주리고』의 의미는 창세기에서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의 백성들이 기근이 들어 먹을 양식이 없을 때 한 말들이다.
『목마르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서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원망한 일이 있었다. 출애굽기 17장 3절에서『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고 원망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라고 했는데, 모세가 반석을 두번 지팡이로 친 사건이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래서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아라는 뜻으로 주신 것인데, 백성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주리고 목마르다』는 의미는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 보려고 하다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깨달을 때를 말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