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니라


마태복음 37-44절에서『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많은 교회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하고, 환상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사탄의 시험에 빠져들 수 있다. 사탄은 속인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사탄은 온 천하(세상 사람들)를 꾀는 자다. 하나님은 사탄이 인간들을 어떻게 시험할지 다 알고 계시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셨다. 예수님의 시험을 보고 깨달아서,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마귀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자를 미혹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미혹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 마귀는 구원의 주체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이라고 말한다. 나는 죽고, 예수만 존재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구원의 주체는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서『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마찬가지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이들을 제외하고 단 두명 뿐이었다. 민수기 14장 30절에서『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 중, 데려가는 자도 있고, 남는 자들도 있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다 듣고 믿었는데, 어떤 이는 데려가시고, 어떤 이는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인자가 오실 때의 믿음은『속히 원한을 풀어달라』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택하신 자들의 원한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사탄의 속임수에 의해서 쫒겨났으므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는 사탄에 대한 원한이 없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사탄에게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런데 예수님이『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사람들이 이런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3장 23-24절에서『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좁은 문이라는 것은 구원받을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왜『좁은 문』으로 표현했는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 라고 말을 하지만, 실상은 모른다는 말씀이다. 

노아때 홍수가 나도 그 홍수가 왜 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좁은 문은 구원의 문이다. 생명을 얻게 되는 천국 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문이고, 양의 문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7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라고 말씀하셨다. 10장 9절에서는『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런데 예수를 발견하고 찾는 자가 적다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교회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이 말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예수님이 밝히 드러나야 천국 문이 열린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천국 문을 닫아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안에서 감추어져 있는데,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제대로 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었다면, 율법을 통해서 옛것과 새것을 분별하여 다른 이에게 설명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들은 율법을 닫아버린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52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옛것은 율법, 새것은 복음이다. 바리새인들이 옛것을 버리고 새것(복음)을 붙잡아야 하는데, 옛것만 붙잡고 있다는 말이다.

 율법을 지켜서 천국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옛것을 붙잡는 바리새인들이다. 율법을 지켜려고 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다 가셨는데도, 여전히 율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인자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노아의 때와 같다는 말이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그들이 왜 멸망당하는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왜 멸망당했는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반드시 멸망당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수가 엄청나다. 그러나 구원받을 자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난 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도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죽지 않은 자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의식과 절차,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율법적인 생활, 죄를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들, 수많은 것들이 좁은 문을 닫게 하는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왜 멸망당하는지를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술취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술취함은 세상에서 술을 마셔 취하지 말라는 것도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변개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령도 받고, 율법도 행하는 이중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중적인 언행은 결국 성령이 없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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