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세기 1장 3-5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에서 빛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흑암의 세계에 빛을 주시면서 언젠가 참 빛이 이 세상에 오시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물질의 빛이 세상을 비추듯이, 하나님의 참빛이 오셔서 죽어 있는 영에게 비춰 살리시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빛은 온 세상을 동시에 밝혀주지 못한다. 빛이 가면 어둠이 오고,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간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왜 빛과 어둠을 나누셨는가?
이 말씀은 물리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참빛이 세상에 오시면, 참빛에 들어가는 사람과 어둠에 있는 자들로 나뉘어진다 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과 밖에 있는 자들로 나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만 한다.
요한복음 3장 19-21절에서『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참빛에 있는 자들은 영생이 있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믿음에 대해서 세가지의 유형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애굽에 갇혀 있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출애굽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가데스바데아에서 가나안에 열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열명의 정탐꾼들은 『들어가면 죽는다』라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 만 들어가면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애굽한 백성들 모두가 열명의 정탐꾼의 말을 믿고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간 떠돌다가 다 죽었다. 그들을 옛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새사람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세번째는 하나님이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율법을 주셨는데, 잘 지키면 의롭게 여기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백성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고 했으며, 죄를 지으면 제사를 드림으로서 그들은 의인이 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자기의 의에 빠진 자들이다.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것이 자기의 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약속의 후손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메시야를 기다려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오늘날에 적용하면, 출애굽은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사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그리스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알려주신다. 곧 옛사람은 자기라는 육적인 정체성을 말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피를 의지해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율법으로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 마음의 할례가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다. 예수와 함께 죽으면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에 묶여 있다면, 부활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붙잡고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그에게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율법에 의해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율법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적으로 살아간다면, 거짓말을 하는 셈인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예수의 보혈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옛사람이 죽어야 하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서 의에 이르도록 해야만 한다. 레위기에서 부정한 것의 정결의식에도 반드시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도록 되어있다. 속죄제는 피를 뿌리는 제사이지만, 번제는 태워 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면 세상(사탄)에 대해서 죽고, 죄(옛사람)에 대해서 죽고,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과 하나이듯이 저희들도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서 말씀하신다.『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마태복음 24장 38-39절에서는『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홍수가 왜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까지도 그 이유를 몰랐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위의 세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이 말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을 계획하신바 된 것이다. 이것이 은혜다. 사람들은 어둠가운데 있지만 어둠가운데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해와 달이 만들어지기 전인데, 어떻게 빛과 어둠을 나눌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한다.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하나님이 왜 이렇게 밤과 낮이 있게 하셨는가?
이 세상의 시작은 어둠에서 시작되었다. 빛이 항상 있으면 어둠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빛이 있게 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빛이 없는 때는 저절로 어둠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들은 빛이 없는 어둠에 갇혀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둠에 있지만 반드시 빛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다. 어둠에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빛으로 찾아오실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서 1장 19-20절에서『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어둠가운데 있는데, 빛이 오게된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진리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둠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먼저 빛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빛 같은 존재인데, 어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빛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탄에 미혹당하여 살고 있는 모습이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사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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