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1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세상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대제사장으로서 나아가게 되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다 사하심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이튿날 요한(세례)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다. 어린양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바로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예수님이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어둠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고,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간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서는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동물의 희생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1절에서『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단번에 드린 희생제사였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장 12절에서는『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 하셨으며, 10장 14절에서는『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라고 했다. 예수님의 희생제사로 인하여, 단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온전하게 된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5-18절에서 이를 성령이 증거하신다고 했다. 이를 믿지 않는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는 것이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성령이 증거하는 내용은 세가지다. 첫째는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둘째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셋째는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라고 분명하게 성령이 증거하신다고 했다.
첫째는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항상 마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령은 증거하시는데, 믿는 자가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 내 법이라는 것은 율법을 말한다. 즉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율법의 모든 조문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이 이것을 증거한다는 말씀이다. 성령님이 중거하는데, 믿지 못해서 율법을 통해서 다시 내가 죄를 지었는지 살펴보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성령의 증거를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율법으로 판단하실 것이다. 그래서 단 하나의 잘못이라도 있으면 구원받을 수 없게 된다.
둘째,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을 하면서, 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시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 하나님은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고, 사람들은 계속 매일 매일의 죄를 떠올린다. 성령의 증거는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이다. 연약한 육체가 있으므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죄를 씻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령이 증거하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져가신 세상의 모든 죄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의미한다.
셋째는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구약시대 제사는 다섯가지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죄인은 직접 제사에 나가지 못하고, 제사장이 대신 하나님께 희생의 피를 가지고 나아갔다. 죄인이 가지고 온 양에게 안수해서 죄를 전가시키고, 양을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는 형식이다. 그런데, 그 양이 대신 죽었지만, 양의 죽음이 바로 죄인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죽은 양과 죄인이 연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죽음은 신약시대에는 바로 회개와 연결된다. 그래서 회개는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제사가 신약시대의 예배다. 예배는 무엇인가를 드리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아가 멸해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멸해지는 것이 바로 구별이요 거룩인 것이다. 성령이 증거하는 것은 제사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즉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매일같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 날마다 회개하고자 하는 자는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죄를 기억하고 반성할 것이 아니라, 옛사람의 죽음을 기억하고 확인하는 것이 예배가 되는 것이다. 옛사람은 육체로 비롯된 탐욕이 바탕이 되는 육의 몸이다. 육체와 육의 몸은 어떻게 다른가? 육체는 눈으로 확인되는 육체다. 그러나 육의 몸은 영의 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눈으로 확인 불가능하다.
사도바울은 부활을 설명하면서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날마다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육의 몸을 입고 있는 자들이고,단 한번의 제사로 회개가 완료되었다고 믿는 자들은 영의 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영의 몸은 하늘로부터 물과 상령으로 태어난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말한다. 5장 18절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
거듭난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세가지를 증거해주시는데, 이를 믿지 않는다면, 거듭난 자도 아니요, 성령의 증거를 방해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거듭난 자는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성령의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를 말한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의 교회는 날마다 회개해야만 구원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린 보혈은 사람들에게 현재까지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현재를 적용시킨다.『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이 말은 성도들에게 다시 죄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있는 동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다만, 육체의 연약함으로 날마다 죽은 자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성령이 증거하시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결국 거듭난 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지만, 거듭나지 않은 자는 율법에 따라 매일같이 죄를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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