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창세기 3장 22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이 말은 히브리어원래의 단어에는『우리 중』이라는 말은 없다. 그런즉『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고 번역되었어야 한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되었다는 말이다.『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는 맛소라 번역본에서, 히브리어의 자음으로 의미를 추적해가면『우리 중』이라는 말이 없다. 모음을 붙이고 전체적인 의미를 재해석할 때 이런 내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성경은 원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보존되어진 사본을 비교 분석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즉, 이는 본문비평 연구의 결과에서 얻어진 산출물이라고 하겠다. 구약 사본은 파피루스 형태가 드물고 대부분 양피지에 기록한 것들이 많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 수는 약 1,000여개 정도로 추정된다. AD 2세기경의 랍비 아키바는 당시에 산재한 사본들을 집대성하고 정리하여 정통적인 히브리어 성경을 제정하고자 주창하였다. 이를 계기로 히브리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많은 구약 주석방법이 개발되었으며,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 내용을 구분하기 위한 절의 구분과 각종 부호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노력은 계속되어 마침내 6-7세기경에 맛소라 사본이 만들어짐으로써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자음만 있던 히브리어에 모음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을 주도한 유대인 학자들을『맛소라』라 불렀고 그들에 의해서 모음이 붙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맛소라 사본』이라 부른다. 모음을 붙일 때 자음 하나 하나를 분해해서 다시 재해석할 때, 원본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의 단어를 분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구약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대부분 교회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사람이 선악을 알게하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라고 말하므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인데 인간이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죄를 범한 것이고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므로 모든 인간이 죄를 지어 죽는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 생명과 사망이라고 말을 할 때는 비록 육체적 사망을 말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생명이고 하나님과 떨어진 것이 사망이라고 한다.『죽는다』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말이다.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 만의 고유 주권인데,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므로서 선악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게 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22-24절의 말씀이 있으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창세기 3장 22-24절에 기록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것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으면 죽는 나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한 내용을 설명할 때도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 라고 한 죽는 나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나무요, 자기의 의를 보여주는 나무(율법)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사람들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창세기 3장 22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더라도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성격을 그 이름 속에 담아두신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의문을 가졌어야 하는 것이다. 

의문을 갖지 않으니까 아담을 몇 천년 동안 파렴치한 나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들의 생각일 뿐인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오셨는데, 창세기 3장 22절에서는『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라고 말하는데, 교회사람들은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 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될찌니라 에서 한 몸의 하나는『선악을 알게하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가 되었으니』의 하나(히브리어 에하드)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하나처럼 되었다』라는 것은 교묘한 술책이다. 본래는『하나가 되었다』 라는 말인데, 『하나같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하나가 되었는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인 것 처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것과 하나가 되었다』 라는 것이다.『아버지 하나님처럼 되었다』라는 말은 완전한 동질성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하나님 처럼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라고 말해야 맞는 말이다.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것을 마치면 우리와 하나가 된다는 것인데, 이미 창세기 3장에서 하나가 되었으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힘들게 기도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볼 때도『하나가 된 것 처럼』은 사단의 술수이요 거짓말인 것이다. 인간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았으니까 예수님이 기도하는 것인데, 마치『하나가 된 것 처럼』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엄밀히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예수님의 하나가 되게 기도하신 대로 하나가 되었으면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처럼 또는 하나같이 라는 말을 슬쩍 끼워넣으므로『하나』의 의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가 아니라 권위에 도전하는『하나같이』의 의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위해서 오신 것은『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으면 바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생명이 되었으면 죽어서도 안되고 쫒겨나서도 안된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니라』에서 한 몸이 되라는 전제는 한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한 몸이 되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희는 다 그리스도와 분리 되어서 따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서 너희 지체와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되었지만 반드시 지체와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하나가 아닌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것이다.『하나가 된다』라는 것은 이렇게 분명한 동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하나님처럼』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라는 의미도 아닌 불분명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하나님은 그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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