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갈라디아서 2장 3-4절『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 삼년동안 있다가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게된다. 그리고 고향 다소에서 지냈다. 바나바가 다소에 있던 바울을 찾아가서 안디옥으로 가서 활동하도록 권유받고 바울은 바나바와 다시 안디옥으로 갔는데, 가서 활동하는 중에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의 문제를 들고 2장 1절에서『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라고 말한다. 

당시 안디옥 교회에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의 교회였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신도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하여 이 문제를 매듭짓게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기 전에 베드로와 야고보 등과 만나서 사전에 안디옥 교회의 상황을 전했다.

 갈라디아서 2장 2-4절에서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그래서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야고보 등이 참여하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전혀 하자가 없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계시에 대해서는『덮혀져 있는 것이 벗겨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서『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참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약시대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았다면 계시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갇혀있는 자라는 것을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계시라는 것이다. 

계시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소경들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소경인 자들이 바로 이런 상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이사야 6장 9-10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는가? 그 이유를 이사야 29장 13절에서 밝히고 있다.『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람의 계명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른채, 성경 귀절만 이용하여 인간의 목적에 이루도록 말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가 될 것이다. 십일조를 잘 하면,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복을 풍성히 받을 것이라고 연결한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예수님이『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아주 작은 소득이 있는 것을 정성스럽게 십일조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참 좋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십일조를 드렸는데, 정작 율법에서 정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에 의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잘 한 일인데, 율법 속에 담겨진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지적을 하는 것이다. 

율법은 행하면서 율법이 나타내고자 하는 좋은 일을 봐야하는데, 율법이 말해주는 장차 오는 좋은 일은 버렸다는 말이다. 결국 십일조를 낼 때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았어야 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 속에 있는 의와 인과 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의는 심판을 의미한다. 율법 안에 있는 심판을 버렸다는 말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기 위해서 준 것인데, 그것이 바로 심판이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죄가 있어서 심판받아야 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두 심판받아야 되는데,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하면서 스스로 의롭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십일조를 하면서도 심판받아야 하는 것을 다 잊어버렸다 라는 것을 예수님이 지적하는 것이다. 

인은 인애, 긍휼을 말하는데, 하나님이 자기 처소를 지키지 아니한 범죄한 천사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멸하시지 않고 떠나서 이 세상에서 스스로 선을 이루어 보도록 기회와 긍휼을 주신 것이다. 율법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이 없는 자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애굽으로 부터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을 떠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긍휼을 베풀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신은 믿음이다. 율법 안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믿음이 있다. 사도바울이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는 표현을 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그 율법 속에는 인간들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와서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겠다고 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요, 그러나『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는,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과 믿음이 그 율법 안에 있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약시대 은혜의 복음에 구약의 율법을 적용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언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율법은 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법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고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 은혜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을 적용시키려고 한다면,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갈라디아서 4장 10-11절에서『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날은 안식이고, 달은 이스라엘 절기를 말하며, 년은 안식년 희년을 말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율법을 주셨는데,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믿지 않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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