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갈라디아서 4장 30절『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을 전도 여행을 하는 중에 병에 걸려서 그곳에서 병을 치료했었다. 병이 든 중에서도 전도를 진행했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병이 든 바울을 좋게 대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선데 대해서 바울은 마음의 고통이 있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복음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율법을 지키려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율법을 설명하려고 한다. 

율법을 다시 지키려고 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5장 3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율법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은 율법의 어느 한 부분 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항을 다 지켜서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할례는 율법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그것만 지키고 다른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선별적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 지키던지, 다 안지키던지 두가지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키다가 그 중의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을 모두 범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떠난 자들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율법 아래 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한다면,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비유를 들어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했다.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되었으되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이스마엘)는 여종에게서, 하나(이삭)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있었다. 이삭은 사라(자유한 자)에게서 나왔고, 이스마엘은 계집종 하갈에게서 나왔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났고,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다. 두 아들은 두 언약을 상징한다.『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예루살렘은 율법을 상징한다. 그런데,『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이삭을 낳은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그림자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참 형상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하면서 이사야 54장1절에 있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시기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때 이스라엘은 영적인 의미에서 구원받는 천하만민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는 사탄의 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갈라디아서 4장 4-6절에서 설명하고 있다.『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율법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은 종이 지키는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도받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곧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서『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그때는 창세기의 이야기의 때다. 창세기 21장 9절에서『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그래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쫒으라고 요구하자, 아브라함은 그들을 내어쫒았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교회에 들어와 복음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율법과 율법주의자들을 내어 쫒아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브라함이 고민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창세기 21장 12절에서『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하나님이 이렇게 내어쫒으라고 하셨는데, 교회에서 율법주의자를 내어쫒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이 율법을 근거로 율법주의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율법은 복음이 오기 전까지는 존재하게 된다. 사라와 하갈의 이야기에서도 하갈이 임신을 하고, 주인인 사라를 없신여기자 사라가 심하게 구박했다. 그래서 하갈이 임신한 채 도망가다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되고, 다시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나고,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자,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쫒아낸 것이다. 약속의 자손이 오기까지는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그 위치를 차지했지만, 약속의 자손이 오므로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막으로부터 쫒겨나가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약속의 자녀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삭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데,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자들이 다시 이스마엘을 불러드리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다. 지킬 때와 버릴 때가 분명히 다르다. 버려야 할 때에 지켜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켜야 할 때는 이미 지났다. 왜냐하면 약속의 자녀가 왔으므로, 약속의 자녀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지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자들은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와 같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해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30-31절에서 결론내린다.『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에서 벗어나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율법적인 제도와 규칙들을 폐하지 않으면, 모두가 율법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입은 자가 되어야만 구원에 이르게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