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며
에베소서 4장 11-14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생명이 누구에게서부터 왔으며, 그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게하는 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바리새인들)이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려왔지만, 정작 사람들이 메시야(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말씀도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성경을 바라보면, 하늘의 말씀을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세상의 풍조에 빠져 있거나, 어린아이와 같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를 따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풍조는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조상에 제사를 지낸다던가, 미신적인 행사를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다. 특히 기독교인이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에 얽매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내야 한다든가, 성전 건축을 위해 헌금을 해야한다든가.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든가(주일도 안식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례받았지만,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를 예수의 피로 용서받아야만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포함된다. 십일조는 율법의 하나로서 예수님이 다 완성하였으므로 십일조가 아니라, 교회 운영을 위한 헌금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성전은 예수님이 성전이며, 성도가 성전이다. 교회 건물이 성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례받았지만, 날마다 죄를 회개하는 자들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아니다.
로마서 6장 3절에서 세례의 의미를 설명한다.『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세례는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과거, 현재, 미래)를 사해주신다.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그래서 날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례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오늘날, 교회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믿지만, 예수와 연합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하나가 되면 온전한 사람이 된다. 온전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의 사람으로 회복한다는 것이다. 영이 살아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영이 죽어서 혼적인 상태가 되어도 예수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가 되려면 혼적인 것이 죽고, 영이 살아나게 된다. 그래서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면, 혼적인 것(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그런데, 로마서 10장 18-21절에서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복음은 이미 다 전해졌다고 말한다. 듣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들어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2절에서『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사실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받아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그동안 교회 사람들이 이방인과 같이 그렇게 행했다고 하는 것이다.『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성경에서 말하는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무감각해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세상과 벗하여 살아가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자기 힘을 믿게되는 그런 자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힘을 믿는 자들은 율법에 근거해서 자신이 죄를 짓는지 살펴보고, 자기가 노력해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들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근거해서 살아온 자들과 같다. 그러나『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은 『다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믿는 것과 아는 일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행위로 나타나냐 한다. 아브라함의 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분명히 이삭이 죽어도 하나님이 부활시켜 주시리라 믿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중단시키시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믿음은 순종이 뒤따르게 된다. 그래서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율법을 지키는 자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므로 강제적인 규칙으로 바른 길로 인도한다. 그런데, 온전한 사람이 되면 율법에서 벗어나, 거룩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바가 되는 것이다. 장성한 자는 이미 선악에 대해서 잘 알고, 영생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규칙을 어길 때 잘못을 깨닫게된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젖을 먹는 자이고,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가 된다.
장성한 자가 되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된다. 즉『율법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주위의 말에 휩쓸려 가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차이가 있다. 구원은 영이 구원받는 것이다. 죽었던 영이 생명을 얻는 것이다. 영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육(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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