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8절『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이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에게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라고 말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어리섞다』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얼마 전의 일인데, 『누가 이렇게 속이던가』라고 묻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님이 소경된 자, 귀머거리를 고쳐주시므로, 유대인들이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이런 일을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2장 27-28절에서『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모독죄를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1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와 모독(훼방)을 지고 가셨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율법을 바라보는 것이다. 율법을 바라보므로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 곧『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에게는 세상죄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가신 것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함을 믿지 않는 자가 된다. 죽지 않은 자는 죄가 그대로 있다. 로마서 6장 7-8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육신으로 말미암아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것을 대표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로마서 8장 3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율법으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믿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의를 이룬 것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오직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바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율법을 통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없이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계속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율법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상징한다.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율법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가 하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서 인간이 되게 하셨고,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셨으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하나님은 한 백성을 택하여 율법을 주셨으며, 잘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은 잘 지키려고 하다가,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복이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계속 율법을 고집하고 있는 모습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율법이 있던 없던 모두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있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가져가셨는데,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교회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도 엄밀히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죄를 다 가져가신 것을 믿는 자가 예수믿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이 말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일을 믿지 않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으신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가져갔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현재와 미래의 죄들은 율법에 비추어 죄를 지시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죄를 범하면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으면 된다고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단번에 세상의 모든 죄와 모독을 가져갔으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가져가셨다.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없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날마다 죽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 예배요, 상찬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대부분 신도들에게 큰 문제가 회개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에게 세상죄를 다 지고 가신다. 그런데, 날마다 죄를 회개한다고 말을 하므로 하나님이 회개하라고 하신 그 의미를 모른채, 세상죄의 문제만 붙잡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돌이키는 것은 단 한번으로 족하다. 계속 회개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이단들은 이 말만 이용한다. 이단들은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회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죽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죄에 대해서 죽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회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에게는 허물과 죄가 있다. 즉 세상죄와 원죄가 있는 것이다. 원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죄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들의 원죄와 이 세상 에덴동산에서의 원죄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원죄를 사해주시고, 세상의 자범죄는 열심히 매일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돌이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의 모든 세상죄를 사해주신다. 다만 원죄라고 하는 죄성(탐욕: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지고 간 모든 죄와 모독은 세상죄를 말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원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원죄는 자기의 의를 말한다. 자기의 의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의 의만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에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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