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갈라디아서 3장 13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을 완성시켰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또한 마찬가지로 율법에서 벗어났는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믿는 자가 스스로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율법을 세우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이 그 율법대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자기가 쳐놓은 덧에 자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서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모든 죄인들은 율법에서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 대부분,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바라보고 지켜나간다고 생각한다. 즉 율법을 지켜나가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다만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6장 3-4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으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율법으로 들어가서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게 된다. 갈라디아서는 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고 믿으면서 율법으로 죄를 짓지 않게다는 생각은 열처녀의 비유에서처럼, 미련한 다섯처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영적 간음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예수님의 말도 믿고, 자기의 생각도 믿고, 적당히 섞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상경은 율법을 지키면, 모든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안된다는 것이다. 선택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율법이다. 신명기 27장 26절에서『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런데,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왜 스스로 세우는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다고 성경은 말을 하는데도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십자가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자가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자는 날마다 죽은 자임을 기억하고 그 믿음을 지켜나가야만 한다. 이것이 예배가 된다. 예배는 드리는 개념이 아니라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배가 되는 것이다. 성찬도 죽은 자임을 기억하는 시간이 된다. 죽은 자가 되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가 바로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세례받았다고 다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 의미도 모르면서 마술쟁이 시몬처럼 세례받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율법의 규정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죄를 물을 수 있는 규정이 없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도『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은혜 아래 있게되므로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를 심판하는 율법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믿지만, 육을 따라 행하므로 죄를 짓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두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자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가 자칫 실수하는 경우다. 하나님이 주권자로서 이 모든 것을 판단하실 것이다. 다만 성도는 날마다 죽은 자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의인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게된다. 그런데, 로마서 10장 5절에서『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그런데,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의 그리스도를 찾아야만 된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하와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마음(탐욕)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율법에 담아두셨다. 즉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가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육신의 마음으로 스스로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육신 속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한다. 그래서 육의 몸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의 저주를 받으셨다. 그런데, 믿는 자가 있으며, 믿지 않는 자도 있다. 예수를 믿는 자, 곧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속량되는 것이다. 속량은 피값으로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죄인을 사는 개념이다. 죄를 씨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죄죄부터 속량을 얻는 것이 구원의 순서다. 그래서 하나님이 속량된 자의 죄를 씻어주신다. 예수님의 보혈은 먼저가 속량이고, 그 다음이 죄를 씻는 개념이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사람들은 죄를 씻는 것에만 집중한다. 죄를 씻기 전에 속량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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