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자손이 오시기까지


갈라디아서 3장 19절『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범법하므로』정해진 규칙이나 규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에서 의미하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에 빠졌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서『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그 죄로 인하여, 율법을 더해주셨다는 것으로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가 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그 열매를 먹은 것이다. 즉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열매를 먹었다는 말은 사탄의 말을 믿었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말이며, 하나님의 자식에서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사탄의 자식이 되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는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말을 쫒아간 영들을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게했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육체를 입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영이 그 속에 들어가지만, 육체를 벗을 때는 영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린 영들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육체로부터 나온 영들은 무엇인가 영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입지 않으면 벌거벗은 영이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3절에서『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악하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인간들은 육에 갇혀있으므로 악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생각하고 보기에 좋으면 선하다고 생각한다.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 의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하나님없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바로 자기의 의라는 것이다. 자기의 의를 중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최초의 언약을 해주셨지만, 이후 인간들은 여자의 후손을 찾기를 거절했다. 노아와 그 가족 8명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았다.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멸하시고, 무지개언약을 통해서 그 의미를 담아두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들은 앞으로 멸망당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노아로부터 시작된 인간들은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천하만민의 모델로 세우셨다. 신명기 12장 8절에서『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그리고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율법은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합당한 대로 그리스도를 찾아서, 모든 인간들이 죄인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통해서, 그 율법을 잘 지키고, 율법을 어겼을 때는 제사를 지내므로서, 자신들은 의인이 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율법은 자기 소견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대로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백성들이 율법 속에서 죄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3장 19-20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한 예로, 십일조를 든다면, 십일조를 바치다가 마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대가로 소작료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이 세상이 나그네라는 것이다. 나그내라는 것을 깨달으면, 고향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왜 인간이 하나님 나라를 두고 이 세상에 왔는가를 묵상하다보면, 에덴동산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길을 찾다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으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됨을 깨닫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이렇게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고, 예수님 당시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오늘날 사는 사람들은 2000년 전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세례요한의 때까지라고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서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마음의 상태를 바꿀 수는 없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오른쪽 눈이 범죄했다고 눈 하나를 빼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눈과 귀가 감겨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으로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모두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율법을 통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살펴보는 사람들은 세상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그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들이 세상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본다는 것이 말이되는가?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죄의 문제에서 자유함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스스로 율법을 다시 살펴보아야 하겠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 적용될 것이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이다. 그런데, 3장 22절에서 깨닫는 자는 3장 24절에서 처럼『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이 없는 자는 여전히 율법 아래 갇혀있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율법을 적용하신다. 율법이 완전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을 적용하지 않고, 성령의 법으로 적용시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이미 적용받았으므로 다시는 율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이며, 율법의 작용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날마다 죽은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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