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누가복음 7장 11-17절에서『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결혼에 대해서 성경은 말한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30-31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난 영을 말한다. 그리고 에베소서 5장 23절에서『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남편이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아내는 교회(영)을 나타낸다. 창세기 2장 22-2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원래 아담과 하와가 하나라는 것이 중요한 이야기다.

 남자(그리스도)가 아내(교회:영)에게 가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만나는 것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내용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셨다. 하나가 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이러한 진리를 깨달아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땅으로 기업을 주셨다. 땅은 아담을 상징한다. 아담은 흙(아다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담이 혼자 있었을 때는 남자다.

 남자(이쉬)에게서 여자(이샤)가 나오므로 비로소 남자는 여자를 만나는 아담이 된다. 이스라엘이 받은 기업은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즉 기업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팔지 못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에는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희년이 되면 매였던 것들이 다 풀어지는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땅에 있던 영들도 희년이 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희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빼앗긴 자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다. 가나안에서 땅을 잃어버리면 기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땅을 잃어버리는 자들은 모든 소망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가나안이 이스라엘에게 기업이듯이, 남자는 여자에게서 기업이 된다. 남자는 그리스도, 여자는 교회(영)을 상징한다. 남자가 여자의 기업인데, 남편이 죽어버렸다. 남편이 죽었다는 것은 아내는 기업을 잃게된다. 즉 약속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을 때, 아들이 있으면 그 유업이 이어지지만, 아들마저 없으면, 유업의 소망이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7장에서 과부가 아들마저 죽어버렸다. 이스라엘이 땅을 기업으로 받았는데, 땅을 잃어버린 것과 남편이 죽은 과부가 아들을 잃은 것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남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31장 31-32절에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버리면, 이스라엘은 소망이 없게 된다. 신명기 7장 7-11절에서 말씀하듯이 율법에서 과부나 가난한 자를 홀대하면 안되게 되어있다. 출애굽기 23장 11절에서도 가난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레위기 19장 9-10절에서도 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이 세상에서는 먹을 것이 없는 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떠나와서 돌아갈 희망이 없는 자가 가난한 자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말은 이 같은 사실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소망을 갖게 하는 일이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이다. 아들이 죽은 과부는 가난한 자요, 돌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소망(약속)이 끊어진 자를 말한다『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을 잃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예수님이 이 여자의 고통을알았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넣으셨는데, 이스라엘이 바로의 압제로부터 고통을 호소하므로 하나님이 약속을 기억하시어 그들을 건져내셨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통을 들으시고,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서 그들을 출애굽하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처절하게 부르짖는 이 여인에게 소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시다.『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님은 이 여인의 소망을 되찾아 주셨다. 이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났지만, 부활이 아니기에 육은 다시 죽는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표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다. 이 소식이 온 유대에 퍼지고, 감옥에 있던 세례요한도 들었다.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서,『오실 그이가 바로 당신입니까』 라고 물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5절에서『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적을 통해서 약속의 그리스도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은 청년을 살리시는 것은 바로 자신이 약속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예수님은『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아이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1장에서도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나사로를 깨우러 가자』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죽어 있는 영을 깨우는 것도 있지만, 예수님이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시는 것이다. 

인간들이 볼 때 죽은 것은 육체가 죽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영이 죽은 것을 죽었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부활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영을 살리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남편이 죽은 과부요, 아들까지 죽은 비참한 과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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