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장 1-8절『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중풍병자는 병을 고치러 왔는데, 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라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신데,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죄를 사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하나님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교회 사람들은 중풍병자가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왔으므로 병의 고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우리도 간절히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확대해석 한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셨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보신 중풍병자의 믿음과 오늘날 교회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과는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야이셨다. 그들은 오랜기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는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깨닫고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기는 하지만,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믿음은 없었던 것이다.
마태복음 8장 10절에서 백부장의 믿음이 소개되는데, 백부장은 로마의 군인으로서 그의 하인에 대한 병을 치료를 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간절히 치유받기를 원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오지 않아도 말로만 하시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에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께 왔다고 표현했지만, 누가복음에는 유대인 장로와 몇 사람을 보냈다고 표현했다. 누가복음 7장 4-5절에서『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위해서 많은 지원을 한 것이 틀림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백부장은 유유대인들부터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예수님이 메시야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부장은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주 내용은 이스라엘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서 본 믿음은 백부장에게서 본 믿음과 같은 것이다. 백부장의 믿음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을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서 본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 속에는 의와 인과 신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의는 하나님의 심판이고, 인은 하나님의 긍휼이고, 신은 믿음이다. 율법에서 말하는 믿음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죄의 사슬에서 구원해주실 수 있는 분,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간절히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을 말한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서 그런 믿음을 본 것이다.
중풍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중풍병자는 단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치유받기 위해서 온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중풍병을 고치러 왔지만, 오랜기간 들어왔던 메시야를 만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율법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계시)을 갖지 못한 자들은 믿음이 오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율법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된 것이다.
중풍병자는 율법 속에서 메시야를 발견하고, 드디어 현장에서 메시야를 중풍병을 이유로 만나게 된 것이다.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기하기 위해 온 것”을 아셨다. 예수님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중풍병자의 이 같은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마가복음 10장 46-47절에서 같은 이야기가 소개된다.『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맹인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었을 때,『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마가복음 10장 52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여기서도 믿음은 바로 바디메오가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런 믿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지나가는 도중에,『옷자락만 만져도 구원을 받으리라』생각하고 옷에 손을 대었다. 마가복음 5장 27절에서『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병이 나앗다. 마가복음 5장 34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여기에서도 믿음은 구원과 관계되는 믿음이다. 그녀는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실패한 것이다. 오히려 이방인에게 구원이 넘어감을 알려주신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이 장면에서 서기관들이 중풍병자가 죄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이『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보다 어렵게 여겨졌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말을 하시자 말자『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이렇게 되니 서기관들과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두려워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권능이 예수님께 임하신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라는 말은 인자가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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