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태복음 8장 23-27절『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 그래서 말씀을 전했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믿지 않았다.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에 육신으로 와도 믿지 많는데, 하물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믿을 사람이 많겠는가? 요한복음 10장 24-27절에서『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믿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나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세상에 그리스도의 양이 극히 적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땅에서 그리스도의 양은 세리, 과부, 죄인들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은 바로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라』라고 하는 말을 듣는 자들이다. 세상이 좋은 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은『나의 아들 예수와 함께 돌아오라』라고 말하고 있다.『예수와 함께』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다. 예수와 함께 연합되는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이 들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닫는 자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야 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데, 배에서 풍랑이 일어나므로 두려워했다.『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예수님을 깨우면,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다. 메시야는 구세주이시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이렇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는 믿음인 것이다.
창세기 1장 1-2절에서『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흑암과 깊음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깊음은 물을 의미한다. 물 위에 흑암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창조하신 땅은 물로 표현된다. 물 위에 하나님의 신(성령)이 운행하셨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말씀은 하늘에 속한 말씀(궁창 위의 물)이 있고, 땅에 속한 말씀(궁창 아래 물)이 있다.『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운행한다는 말은 신명기 32장 11절에서『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성령께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운행하심에 대해서 예레미야 23장 9절에서『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고 깨달아지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창세기 1장 6-7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그래서 하나님의 신은 궁창 위에 있는 물에 계시는 것이다. 궁창 아래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궁창 아래에 있는 물은 땅에 속한 말씀(율법)이고, 궁창 위의 물은 하늘에 속한 말씀이다.
궁창 아래에 있는 물이 바다가 되었다. 드러난 뭍을 땅이라고 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말하는 땅은 물과 뭍을 포함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로 나뉘게 되고, 그 속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볼 때 갇힌 것을 말한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궁창(말씀) 가운데, 모든 것들이 죄 안에서 갇힌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 2장 9절에서『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궁창 아래 물(땅의 말씀)이 궁창 위의 물(하늘의 말씀)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땅에 담겨있는 약속(그리스도)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땅의 말씀은 율법이며, 하늘의 말씀은 복음(포도주)을 말한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물은 율법에 대해서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요한복음 4장 10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생수는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4장 14절에서『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물이 하늘에 속한 물이 된다. 땅에 있는 물은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어서 사람들은 모른다. 하늘에 속한 생명의 말씀이 땅에 내려왔는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만 한다.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큰 놀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람 때문이다. 바람은 성령을 의미한다. 바람 때문에 파도가 일어났다. 그래서 큰 파도가 배를 덮치게 되었다. 배 안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었다. 배는 방주다. 방주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있다. 바다는 율법을 나타낸다. 바다에 큰 물결이 일어났다는 말은 율법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사람들이 파도에 의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깨우게 되는 것이다.『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여기서『어찌하여』라는 말은『어떤 것들을』이라는 말이다. 비록 제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율법 속에서 지내왔던 것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이 그들을 두렵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여기서『꾸짖다』라는 말은『에피티마오』라는 말인데, 전치사 에피(~에)와 동사 티마오(가격을 정하다, 비난하다)가 합성된 말이다. 스가랴 11장 10-13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운 언약(율법)을 폐하기 위해 은총(새언약:그리스도)이라는 막대기를 잘라서, 언약을 폐했는데, 청중(가련한 양들)이 듣고 좋게여겨서 값(은 30)을 쳐주었다. 이 때 값을 쳐준다는 말이『티마오』라는 단어다. 가롯 유다가 예수를 은 30에 제사장에게 팔았다. 여기에서『에피티마오』라는 말은 청중이 은 30에 값을 매긴 바로 그 인자(구세주)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구세주가 바람과 바다에 드러났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예수님이 오셨으므로 바람과 바다가 잠잠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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