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모양 곧 자기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셋이라 하였고
창세기 5장 1-3절『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히브리 원어(단어)를 연결하면,『아담이 자기의 형상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다. 어역하면『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이 육체로 나타난 첫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아담 안에서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다시 오시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마지막 아담)이시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첫사람 아담이 이 땅에서 생명체가 되고 그 다음에 인간들이 생명체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생명체를 물려받지만 영은 죽어있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이 영을 살려주시러 오시는 것이다.
창세기 28장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야곱이 벧엘이라는 곳에서 꿈을 꾼 내용이다. 사닥다리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와 같이 영들(천사의 영)이 이 땅으로 내려오고 다시 올라는 것이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야곱(이스라엘)에게『너희들이 어떻게 해서 이 땅에 오게되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 표현을 예수님이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나다나엘에게 설명하신다.『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인자가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창5:1) 아담은 하나님이 육체로 이 세상에 나타나신 첫사람이다. 사람들은 아담은 하나님을 닳은 형상을 가졌다고 말을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아담으로부터 한쪽을 끄집어내므로 여자가 되고, 한쪽을 잃은 쪽이 남자가 되는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벗어나므로 그 영들(여자)이 아담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아담은 한쪽의 틀을 잃어버리므로 남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그리스도)와 여자(영들)가 다시 결혼하므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이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왔다가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돌아가는 것이 복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곧 범죄한 영들이 하나님 나라를 떠나서 이 세상에 왔음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두시어 그들을 이끌어두신 것은 다시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이 이야기가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전체를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즉 사탄에 미혹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탄은 스스로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미혹을 하므로 하와(영들)이 미혹당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쫒아낸 것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쫒아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들을 이 땅에 내보내면서, 이 세상에서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하시면서 보내셨다. 그러나 그 의를 이루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다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에게는 그 동안의 일을 묻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든가, 우상에게 의존하던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이스라엘에서 나타난다.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들이 이스라엘 이었다. 하나님은 탕자의 비유처럼 계속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마지막 아담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사탄과 원수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와 사탄의 관계를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다시 재조명한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백은 10의 열배다. 10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고, 열은 말씀이 이루어지고 성취됨을 나타낸다. 삼십에서 삼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때, 아담은 셋을 낳았다. 셋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아들과 믿는 자가 하나가 되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그가 바로 셋이 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하나님과 하나가 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성도가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셋은 아벨대신 얻은 아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대를 이어가는『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셋이 에노스를 낳는다. 에노스는 이쉬다. 이쉬(남자)는 땅을 가는 자다. 땅을 가는 자는 가인의 표상이다. 즉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표현한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영들의 관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신다. 가인과 가인을 예표하는 모든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는데, 실패할 것을 알고, 돌이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가 노아의 시대와 또 그 이후의 시대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복음은 창세기 3장 15절 이후에 계속 끊이지 않고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에노스 이후에 여호와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며, 자기들 마음대로 망령되이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인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여호와를 망령되이 부르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그리스도를 죽이려 하는 자들은 자기의 의를 높이려는 자들이다.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다. 666과 같은 표를 받아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 순환적 상황이 끊어지면, 즉 온 세상이 가인과 같은 약속의 그리스도가 없는 상황이 오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노아의 시대가 바로 그 상황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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