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면 어찌 들지못하겠느냐
창세기 4장 6-9절에서『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제물은 이스라엘이 버린 과부, 귀신들린 자, 맹인, 죄인들이었다. 이들은 이방인취급을 받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셨다. 가인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처럼 인간이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는 자기의 의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드리는 자의 제물을 받으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은 바로 탕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그것이다. 이스라엘이 버린 과부, 귀신들린 자, 맹인, 죄인들이 바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탕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영접하신다. 그러나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말은 내가 율법을 통해서 나를 지켜 의로워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받지 않으신다. 즉 가인의 예물을 받지 않으셨다.
『가인이 안색이 변했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에 대해서 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를 한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14절에서『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26장 4절에서『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그 외에도 여러 군데 이런 표현들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신다.『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선을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엉뚱하게 행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켜행하면, 죄를 짓지도 않게되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자를 받지 않으신다.
신명기 5장 21절에서『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지만, 이렇게 탐욕을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으면, 인간 속에 탐심이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탐심이 있는 자들이라고 알려주신다. 그 탐심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그 마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임을 깨달아야만 했는데,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 선을 행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가 된다. 그런데, 백성들은 열심히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스스로 의를 이룬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이 악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로마서 3장 19-20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이『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원어에는 낯이라는 말이 없다.『네가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다.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난 자요,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요,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자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말씀하신 대부분은 자기의 의를 버리고,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고, 정말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이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죄인들은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함이었다. 그런데, 율법을 행하여 의를 이루려고 하므로,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을 행하지 않는 자가 되어 죄가 있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셨는데, 백성들은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가 없다 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이『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했는데, 가인은 죄인임을 깨닫기는커녕, 아벨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다. 탐심은 우상숭배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나의 의를 지키려고 하므로 우상인 것이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자기의 의를 내려고 하는 모든 하나님을 떠난 자는 사망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이 말은 요한복음 11장 49-52절에서의 의미를 나타낸다.『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가인(가야바)이 아벨(예수 그리스도)에게 『백성을 위해 죽어줘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야바는 마치 백성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리므로 죽여버리겠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을 위해 백성들의 손에 죽는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들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을 의미한다.『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나님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무덤을 봉하고 지키고 있었으며, 군병들이 아무리 무덤을 지키려고 해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이 군병을 매수하여,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훔쳐갔으므로, 우리는 예수의 시체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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