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
마태복음 7장 24-29절『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이 말씀은 교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곤란하다.『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여기서『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다. 씨뿌리는 비유 속에서 하늘의 비밀을 깨닫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늘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비밀을 깨닫는 자는 지혜로운 자들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7장 21-22절의 말씀과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그 의미를 깨달을 때, 마찬가지로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예수님은『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주신다.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 행함에 대해서 몇가지의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는 것이 행하는 것인가? 성경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율법은 예수님이 이루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을 이미 이룬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신약에서는 맞지 않는 것이다.
둘째, 교회 사람들이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율법을 통해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이루고,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율법의 조항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무엇인가를 행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고, 율법은 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잠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가를 반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죄에 대해서 죽지않았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거울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더라도 육신을 가진 몸이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율법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완전히 이루신 일(율법의 완성)을 믿지 않는 것이다.
셋째,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매일 씻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날마다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죄를 씻는다. 그런데, 로마서 6장 6-7절에서는『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성경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사해주시는 방법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죄의 문제가 아니라, 옛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옛사람이 죽을 때 죄를 사해주신다. 죄를 고백하고 죄를 없애달라고 기도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옛사람(탐욕)이다. 이것이 죽어야만 한다. 이 옛사람이 죽지 않고, 스스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성화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자기가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구원은 예수를 믿으므로 받았지만,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될 수는 없지만, 성화된 삶을 향해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닮아가면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닮는 것과 하나가 되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닮는 것은 비슷하게 되지만 원래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넷째,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가 된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함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믿는 자의 죄를 대속한 것을 믿지만, 예수와 함께 죽었음을 믿지는 않는다. 성경에 관련 말씀이 있지만 무시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세상에 대해서 죽고,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는데, 말은 아멘이라고 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다섯째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그 시점은 세상죄를 예수님이 2000여년 전에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때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기 위해 오셨을 때,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세상죄를 다 가지고 가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죄를 다 사함심을 받지만 성령훼방죄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갔지만 그러한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성령훼방죄가 남게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세상죄와 성령훼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런데, 매일 매일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해야만 한다. 날마다 죽는 자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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