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장 13-14절『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여기에서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육신대로 살면 육체 속의 영이 죽고, 몸의 행실을 죽이면 영이 살아난다. 육과 영은 서로 대립하고 있는듯하다. 육과 영이 만나서 인간이 되었는데, 서로 원수지간처럼 느껴진다. 이 때 육은 옛사람, 육으로부터 나오는 탐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육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숨어있는 탐욕의 마음 때문에, 영이 죽는 것이다.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영이 살아나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로 육의 옛사람이 살아나지 않도록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이 옛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즉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새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믿는 자가 회개하는 자다. 그런데, 오늘날 회개의 의미가 잘못되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 세상에서 지은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에 대해서 회개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벗어난 자를 의미한다. 원래 하나님 안에 있던 자인데, 하나님을 떠나려고 한 것이 하나님께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자기라는 존재성을 부인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그런데,『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이 귀절을 회개로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베드로가 예수님이 발을 씻겨주실려고 할 때, 절대 발을 씻지 못하리이다 라고 말을 했을 때, 예수님은『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베드로가 발 뿐만아니라 손, 머리도 씻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13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이 말에 대해서 원죄는 깨끗하게 되었으나, 자범죄는 발을 씻듯이 날마다 회개해야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몸의 행실을 죽이려고 노력하며, 간혹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즉시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고백하고, 이제 죄가 없어졌다고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서로 발을 씻겨주라고 당부하신다. 요한복음 13장 14절에서『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여기에서 핵심은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발을 씻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서로 발을 씻겨주라는 것은 형제의 잘못을 서로 용서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형제가 형제에게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용서해주면 죄가 없어진다. 예수님이 모든 세상죄를 지고 가므로, 형제들도 그렇게 자기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주라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발을 깨끗하게 씻는다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거룩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멸해지는 것이지, 자기가 노력해서 거룩하게 되고,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7-18절에서『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육체의 소욕에 사로 잡혀있는 자들은 바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가 된다. 육의 소욕은 내가 스스로 죽일 수 없다. 오직 성령께서 육체의 소욕(탐욕)을 통제하고 죽인다. 성령이 내 안에 없으면, 율법 가운데 있는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은 자인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스스로 노력해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율법에 비추어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몸의 행실은 성령이 통제하시지,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들이다.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자들이다. 그러나 성령이 육신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얻는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이 함께 하는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성령이 함께 하지도 않은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나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아들의 명분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속량되어야 하는 것이다. 속량은 하나님이 어둠의 권세에 있는 자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의지하여 자유함을 주시는 것이다. 자신이 어둠의 권세 아래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어둠으로부터 건져내주신다. 이것이 속량이다. 바로의 억압아래 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강한 손으로 그들을 출애굽시켜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속량받은 자, 아들의 영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아들의 영(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속량은 거듭남과 연결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죽은 자가 거듭난 자가 되고, 속량되는 것이다. 속량받은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율법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자유함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30-31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여종과 그 아들은 바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내쫒으라고 한다. 율법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 히브리서 10장 15-18절에서『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속량된 자라는 것을 증거하신다. 성령이 증거하시는 자들은 율법에서 자유함을 입은 자들이 된다. 그래서 스스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성령과 상관없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 증거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지, 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을 따르는 자들은 종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