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제물을 드린적이 있느냐



아모스 5장 21-25절『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것을 말씀하셨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린 자들이 가인과 아벨이다. 그런데 제사중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있고, 받지 않는 제사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두고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주의 뜻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주의 뜻을 다양하게 생각한다. 마치 마태복음 7장 22절의 말씀이 주의 뜻인양 생각하는 것이다.『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서 7장 23절에서 이들을 불법적인 사람이라고 선언한다.『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신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는지 거의 모른다. 다만 『받았음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받은 것이 증거가 있다. 임의로 생각하고,『믿습니다』라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예배는 웅장한 찬양과 제사장 모습으로 거룩을 상징하는 복장과 설교말씀, 그리고 그 말씀에 화답하여 아멘 이라고 하고, 예배를 드렸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셨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오늘날 교회 신도들에게 예배를 받은 적이 없다 라고 말씀하시면, 정말 황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면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마치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것처럼 그런 모양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마귀의 자식들인데, 하나님이 어떻게 예배를 받을 수 있는가? 가인은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상징하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나타낸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다. 땅의 것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뱀(사탄)의 자식인 것이다. 자기의 의에 사로잡힌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의 의가 그대로 살아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의 예배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들을 에덴동산에서 나가게 했다. 오늘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그들을 쫒아내실 것이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아벨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상징한다. 첫 새끼는 장자다. 장자 역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드리는 예배는 자기를 드리는 것이다. 곧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죽음을 의미한다. 교회는 옛사람의 무덤인 것이다. 믿음은 서로 아는 것이다. 신도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도 성도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신도는 하나님을 아는데, 하나님은 신도를 모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는 신도는 오직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만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하늘보좌 우편에 감추어진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의 신부를 잘안다. 신부를 모르고 결혼하는 자가 있는가? 그런데, 신도들은 모두 예수님의 신부라고 말한다. 신랑과 신부는 하나가 되는 존재가 된다. 살과 피를 나누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살과 피를 드리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를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영적으로 산 제물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런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드리는 것이 된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결국 예배는 내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리는 것이다. 내 마음에 만족한 것을 드리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예배의 형식이 있겠지만, 예배 속에 무엇을 드렸는가가 중요한 점이 된다. 나를 드린다는 것은 그 예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십자가에서 죽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이다. 예배는 구약의 제사처럼 드리는 개념이 아니라, 그 예배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예배라는 것이다. 그것이 영적 예배이고 제사가 된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6장 39-40절에서『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신도들은 믿음에 대해서 오해한다. 믿음은 아브라함이 백세때 가진 믿음이다. 죽은 자같이 된 자에게 하나님이 씨를 주신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결국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하나님이 부활시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부활도 없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부활만 있지, 옛사람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무덤이 아니라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모습 만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성도가 성전이다. 왜냐하면 성도이 마음에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성전인 성도가 모인 곳에 하나님이 임하신다. 그래서 성도의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신다. 성도가 모이는 곳을 우리는 예배당이라고 한다. 그 장소는 구약시대처럼 특별히 지정된 장소도 아닌 것이다. 오늘날 영적 교회는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으며, 그 영적 교회가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점차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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