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보내고 여호와께서 그를 닫으시니라


창세기 7장 16절『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암수 둘로 갈라진 생명체가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온 영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영이 있는 육체들이 둘씩 방주에 들어간 것이다. 창세기 1장 22절에서『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늘과 물에 있는 생명체들과 같이 땅에 있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대를 이어서 생명을 이어간다. 이 땅의 법칙을 통해서 하늘의 법칙도 깨달아라는 것이다. 땅의 형체(육의 몸)를 통해서 하늘의 형체(영의 몸)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과 바닷물(하나님 말씀)에 충만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명체에게 같은 의미로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8장 16-17절에서『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암수에게 말씀해주셨다. 창세기 2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된다. 남자와 여자는 에베소서 5장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찾아와 그들과 함께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고린도전서 14장 33-34절에서『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남녀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는 성도다.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방주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10장 7절에서 문은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는 양의 문이다. 이사야 22장 22절에서『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요한복음 10장 3절에서『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하나님이 문을 열고 닫는 문지기이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양들(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한 천사들)을 데리고 하늘의 문을 나서고, 다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데리고 문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말은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세상에 영들이 인간으로 들어오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고 닫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방주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든 생명체가 들어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암수가 만나서 하나가 되지 않으면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가 되지 못한 생명체는 하나님 앞에서 제물이 되어 멸해지는 것이다. 방주에서 내린 후에 노아는 짝이 없는 정한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 모든 방주에 탄 생명체가 이 제물과 같이 다 멸해졌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체로서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방주에 타고 있었던 생명체는 홍수에 다 죽은 생명체를 상징한다. 그리고 방주에서 내린 생명체는 다시 태어난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다.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거룩한 삶을 사는 그런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가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하나님이 데려가신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홀연히 데려가셨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데려가신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데려가신다. 마태복음 8장 11-12절에서『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0일간 주야로 비가 내렸다. 방주에 탄 생명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생명체가 죽었다. 창세기 7장 17-18절에서『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물은 궁창 위의 생명의 말씀을 상징한다. 그 생명의 말씀이 점차 차므로, 방주가 떠 올랐다. 말씀이 더 깊어지고 깨달아지면,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가 계시되는 것이다. 말씀에 충만해지면, 내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고, 나는 사라지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어 나를 주관하시는 것이다. 

창세기 7장 20절에서『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십오는 십(말씀)과 오(은혜), 즉 말씀에 의한 은혜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채워지면 산들이 덮힌다. 산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산(하나님이 계신 곳)을 의미한다. 마태복음에서 빛이 비춰지면 산위의 동네가 드러난다고 표현했다. 이 때 산은 율법을 상징하는 시내산을 상징한다. 그 위의 동네는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산들이 다 덮혔다는 것은 율법이 다 덮혀버려, 율법이 궁창 위의 말씀(물)으로 성취된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홍수로 인해 모두 죽었으며, 방주에 탄 자들만 새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세례(침례)에서도 나타난다.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3장 20-21절에서『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물에 빠져 죽은 자들에게 조차 이 말의 의미를 3장 19절에서 알려주시는 것이다.『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세례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데, 모든 과정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음부에 간 영들은 심판의 부활로 들어가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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