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나의 상급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20장 13-16절에서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에도 상급의 등급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십일조나 건축헌금들을 통해서 이런 말을 한다. 천국을 이 세상에서 한 행위로 연결시키려고 한다. 창세기 1장 15절에서『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했는데, 이 큰 상급은 바로 하나님을 나타낸다. 히브리어로『사카르』라고 하는데 사크는 보수 즉 일한 대가이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한 그 상(헬라어: 미스도스)도 바로 창세기 1장 15절에서『상』을 말하는 히브리어의 사크와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핍박에 대한 대가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바로 영생이다. 영생에는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생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20장 1-16절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한 데에 대한 대가가 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면 그것은 상이고, 예수를 믿지않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은 벌이다. 벌도 예수 안믿고 제멋대로 산 대가인 것이다. 성경에서 기업이나 유업으로 표현한 것도 있고, 사도바울이 달음박질에서 1등을 하는 것이라는 표현한 것도 있지만 천국에서의 상과는 좀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했다. 즉 천국은 집 주인과 같다. 집 주인이 원하는 것은 품군을 얻는 것이다. 포도원의 일이 끝나니 주인(하나님)이 청지기에게 일한 대가로서 품군의 삯(상)을 주라고 했다. 포도원에 빨리 들어온 자나, 아주 늦게 들어온 자나 똑 같이 한 데나리온을 지급했다. 그런데 먼저 들어온 품군들이 주인에게 불만을 토로했는데, 주인은 내 뜻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을 하는가 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자에게 동일하게 상(생명)을 주는 것이다.
성경에는 탕자의 비유가 있다. 모든 인간들이 탕자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갈 때 뭔가 상을 기대하고 생각한다면 정말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이 죄요,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무슨 생각으로 상급을 이야기 하는지 깊히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인간들에 있어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는 상이 바로 성령이신데, 그 보다 더 큰 상이 있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 당시에 백부장의 부하의 병을 낫게해 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마태복음 8장 11-1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두운 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표현했다.『먼저된 자(유대인)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이방인)가 먼저된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유대인은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방인은 복음을 받아드린 것이다.『이스라엘이 먼저되었지만, 이방인보다 나중된다』는 표현이다.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이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와 드라크마를 발견한 비유를 하신 후에 하신 발씀이다.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는 무엇인가 한 것이 없는데, 목자가 찾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회개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 사람들 대부분은 회개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는 죄를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돌아가려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는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버린 영들이다. 하나님은 영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을 비유하신는데,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큰 아들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양 한마리는 작은 아들을 말한다. 이 비유를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내가 왜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영이 돌아오는 것을 말해주신다.
탕자의 죄는 아버지를 떠난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한다. 회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죽은 자같이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죄와 회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10-14절에서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세리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서 말하는 것을 다 지켰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리들은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세리는 회개했지만,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오늘날도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세상죄를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회개는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에 대한 회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회개는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말한다. 죽지도 않으면서, 세상죄를 회개하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죄인이 회개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에 대한 관심은 없고, 세상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율법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죄와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관심없고, 율법의 계명을 지키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죄를 범하면 제사를 지냈다. 바리새인들은 제사만 지내면 의로운 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세리들은 율법의 제사 만으로 의로운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리들이 깨달은 것은 율법을 통해서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은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 다가간 것이다. 예수님은 세리와 같은 죄인들을 만나주시고, 병도 치료해주시면서,『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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