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18-22절에서『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방주는 이후 성소와 성전으로 나타난다. 성소 안에는 휘장이 있어서 지성소를 구분하고 있다. 이 성소가 곧 방주와 같은 개념이다. 재료와 치수가 그 같은 의미를 말해준다. 방주의 재료는 백향목(잣나무, 고페르)으로 만들어졌다. 히브리어로 백향목은 고페르, 백향목의 진은 고피르트 라고 한다. 이 고피르트는 속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고피르트를 백향목 나무의 안팍으로 칠한다는 것은 방주가 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칠하다(카파르)는 의미는『덮다, 속죄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방주는 속죄제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창세기 6장 15절에서는『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규빗은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님 말씀의 잣대라는 의미도 있다. 삼백에서 삼(3)은 아버지와 아들과 아들을 믿는 성도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취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 열(10)은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십에서 오(5)는 은혜를 상징한다. 사(4)는 고통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끝나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 그 은혜가 바로 율법이다. 그래서 율법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이다. 삼십(30)도 삼백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미하는 방주에 들어가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방주에 들어간 자들은 노아와 가족 8명과 모든 생물(네피쉬하이)들이 암수의 쌍으로 들어갔다. 모든 생물들이 왜 방주에 들어갔는가? 방주에 들어가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옛것은 죽고, 새것이 된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새것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방주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 둘이 만나서 둘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취하여지는 대상이 죽어서 사라지는 개념이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켜 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면, 그 살과 피가 생명이 되어,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53-56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인간이든 모든 생물(네피쉬하이)이든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개념이다. 심판은 사망이지만, 심판 후에는 새로운 은혜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은 사라지고, 포도주가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다. 물이 포도주로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물은 사라지고 포도주가  물로 대체되는 그런 개념인 것이다. 육의 생명(옛사람)이 죽어야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하나님 은혜를 입는다. 율법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가 발견되어 실체로 나타날 때, 이러한 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다. 그래서 새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라는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함을 믿는 믿음이다. 단순히『예수님을 믿는다』라는 표현은 믿는 자가 주관적으로 믿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믿으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자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한쪽이 취해져서 사라지는 것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방주에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은 개념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방주에 취해지는 것이다.

로마서 6장 5절에서『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죽으심과 부활은 십자가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십자가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리고 방주에 들어가서 옛생명은 다 죽는 것이다. 백향목과 그 진액이 대속의 의미를 갖고, 방주 안에 있는 자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다는 것이다. 물에서 죽은 자 뿐만 아니라, 방주 안에 있는 자들도 다 죽은 것이다. 다만 방주에서 나오는 자들은 새로운 생명이 되어 이 땅을 밟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방주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게 된다. 

하나님이 무지개를 통해서 언약을 보여주시는 것은 모든 생명들은 이미 물에 다 빠져 죽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으로 나아가게 해 주시겠다는 언약이기도 한 것이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이 세상에서 일어난 일로만 생각한다면, 방주가 왜 그리스도인가 라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세례(침례)는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의식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노아시대 모든 인간들이 다 죽었음과 같이 세례받는 자도 죽었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물에서 나오는 자들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가족들처럼, 새생명이 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새생명으로 부활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에 들어가도록 지시하신 것도 다 이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하나님이 노아에게 언약을 세우신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약속하시는 것이다.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은 자임을 나타내고, 다시 새생명으로 나타나게 하신 것을 준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 말씀에 준행하는 것은 옛생명이 죽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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