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보낸 이유
창세기 8장 1-6절『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사십일을 지나서』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이 끝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궁창위의 물을 아래로 쏟아버리고, 다시 그 물이 되돌아갔다는 의미다. 궁창 위의 물이 다시 돌아가고 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던 그 때처럼 궁창 아래의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된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보낸 것이다. 창세기 8장 7-10절에서『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내 놓으매』를 히브리어로『샬라흐』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으로부터 세상에 내보내는 것도『샬라흐』다. 창세기 3장 2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즉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쫒겨났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셨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여기서『보내신』 이라는 헬라어는『펜포』라는 단어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
궁창 아래의 물(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에는 궁창 위의 물(생명나무:예수 그리스도)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궁창 아래 물로 가득차 있다. 이 궁창 아래 물에 노아가 까마귀도 보내고 비둘기도 보냈다. 까마귀는 방주 안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고, 공중을 배회하거나 물이 마를 때까지 방주 위에 앉아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비둘기는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다.
까마귀와 비둘기는 비유다. 홍수로 인한 물이 빠졌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등장시킨 새들이다. 하나님은 땅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즉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등장시켜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까마귀는 부정한 새로서 이방인을 상징한다. 비둘기는 정한 동물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다. 레위기 13장 15-19절에서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말똥가리와 말똥가리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가마우지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사다새와 너새와 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디새와 박쥐니라』
그런데 많은 교회 사람들은 까마귀와 비둘기에 대해서 전령으로써의 사명을 잘 감당하므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의 문을 열고 그의 가족들과 수많은 생물들을 이끌고 찬란히 빛나는 햇빛을 받으며 힘차게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교회안에 까마귀와 비둘기가 있다고 더 나아간다. 교회안에서 까마귀 신자는 세상과 교회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교회도 세상과 통해야 하는데 지혜롭고 날쌔게 그리고 용감하게 세상을 향해 나가는 신도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다. 그리고 교회안에는 비둘기 신자가 있으며, 비둘기신자는 거룩함과 순종과 은혜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까마귀의 용맹과 담대함, 비둘기의 거룩함과 순종은 각박하고 음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두 성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교회는 비둘기같은 거룩함과 순종과 은혜를 품고 까마귀같이 용감하고 지혜롭고 날쌔게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해석한다.
『노아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이 말은 넓게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다시 이스라엘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칠일이 애굽의 종살이와 같은 의미다. 칠일은『종살이를 통해서 완전히 단련하여』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감람나무(올리브)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올리브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새 잎사귀는 유월절 어린양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서 종살이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저녁은 어떤 일이 끝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6절에서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12장 18절에서는『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출애굽기 16장 6절에서는『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창세기 8장 12절에서『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여기에서 기다리는 것은『바라는』의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넣어주시고, 율법을 주셔서,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런데,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즉 이스라엘의 실패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이 땅에서 볼 때는 비밀이라는 것이다. 오직 묵상하여 마음의 밭을 가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11-12절에서『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지만,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30절에서『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방인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이방인이 아니라, 죄인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방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분배해주시면서 땅을 팔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그네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나그네가 바로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라는 의미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영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영의 고향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방인이라는 표면적인 내용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이 아닌 모든 민족을 가리키나, 이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들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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