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마태복음 2장 1-6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예언에 따라 이 땅에 내려 오셨다『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중에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미가 5:2)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예비하셨는가? 베들레헴은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벧』은 집, 『레헴』은 떡을 의미한다. 베들레헴은『떡의 집』이란 뜻이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다.『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51)
베들레헴의 첫성탄은 축제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헤롯이 세살 아래 모든 사내 아이를 다 죽였다. 모세가 태어날 때, 모세가 유대민족의 구원자임을 마귀가 알고, 바로왕을 시켜서 아기 때부터 사내 아이를 자 죽인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 마귀가 알았으며, 헤롯왕을 시켜서 그렇게 죽인 것이다. 세계의 역사상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첫성탄은 통곡 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리아에게도 불안하고 고통의 날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날이었다. 성탄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마리아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조세 등록을 위해 남편의 고향인『베들레헴』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묶을 숙소를 구할 수가 없었고 결국 마굿간에서 머물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도 못하고 마굿간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그 때 천사들이 그 지역의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는 것이 구원자, 즉 메시아의 표적이 될 것이라 했고, 목자들은 정말로 구유에 누인 예수님을 보게 된다. 구유는 짐승의 먹이통이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하신 모습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초라한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회개하는 죄인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신 예수님이셨다.
죄인은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다. 이사야 선지자는『소도 제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안다』고 했는데, 죄인은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알아볼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대적자로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내 말에 거하지 않은 자는 모두 사탄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생명을 내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다. 죄인들은 원래 그 죄인들의 육에 갇힌 영이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던 천사의 영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을 구하러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영생을 주는 생명의 떡이 되어주려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 삼으려 몰려왔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내가 영생의 떡이니 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고 영생의 복음을 설명하셨다. 그러자 예수님을 쫓아온 사람들은 물론 다수의 제자들까지 예수님을 떠났다.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한복음 6:66) 그러나 예수님은 곁에 남은 제자들에게『너희들도 떠나가려냐』고 물었다.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요한복음 6:68)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떡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시기에 대해서, 연말 성탄절을 기념하고 있지만, 초막절이었다는 주장이 많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명절은 초막절을 의미했다. 1년 중 가을에 해당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초막절에 태어나셨으며, 다시 재림하실 때는 초막절에 감람산으로 오실 것이다.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있다.
초막절 앞까지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팔절에서 나팔은 하나님의 나팔소리다. 출애굽기 19장 16-19절에서『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직접 강림하셨다. 마찬가지로 신약에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이와 같을 것이다. 강림하실 때, 하늘이 온통 불이 되었다. 신명기 5장 23-24절에서『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신명기는 광야 40년째의 이야기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나팔절이후 부터는 이 땅에 오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오신다는 것이다. 나팔절부터 초막절사이에 휴거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는 그 때까지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때까지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이 심판자로서 오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4절에서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장차 오실 이는 하나님 자신이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하나님 아들이 오는 것은 공중 재림이라는 말씀이다. 계시록에서 오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복음서와 계시록에서 말하는 장차오실 주님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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