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1-34절『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염려와 두려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심판받을 죄라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는 불못에 들어간다고 요한계시록에서 말한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주님은 천국과 지옥을 만드실 만큼 의로운신 분이시다. 왜 천국과 지옥을 구분하시는가? 의롭기 때문이다. 지옥에 보내는 첫번째의 그룹은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주님은 위로하지 않으신다. 잠언에『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올무에 걸리거니와』라고 했다. 속박에 걸린다는 말이다. 사람을 왜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있을 때 우편강도가 좌편강도에게『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라고 한 말을 상기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제자들이 두려워 떨었다. 예수님이 그 배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도 두려워서 떨었던 것이다. 우리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도 주님은 주무실 수 있다. 주님이 찾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제자들은 풍랑에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이것은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배가 가라앉고 가라앉지 않고는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 즉 죽고 사는 것은 주님께 달려있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깨울 때까지 주무시는 것이다. 

인생의 배에 풍랑이 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인생의 배가 가라앉지 않게 노력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을 깨우는 사람인가? 구원받는 믿음은 증명될 수 있다. 주님은 제자들이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 주무신다. 그리고 주님은 자기를 깨울 때까지 기다리신다. 믿음은 상황에 반응하지 않고 주님께만 반응한다. 이 땅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구원받는 믿음은 능히 주님을 신뢰하게 한다. 

두려워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그 두려움 속에는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풍랑으로 부터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는 자는 주님께만 반응하는 자들이다. 상황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께 달려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4-15절에서『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악한 영을 불어넣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는 것이다. 우상에게 절을 하던 안 하던 모든 것은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사람을 두려워 함이 우상에게 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염려에 대해서는『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거듭난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육이 주인이므로 항상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두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영의 몸과 육의 몸이다. 그래서 육의 몸을 부인하라고 하신다. 영의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몸이다. 비록 거듭났을지라도 현재 육의 몸이 있으므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에 예수님이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다만 세상에서 있는 동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다.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다만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길만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회개하는 자, 거듭난 자에게 임하신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 외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자에게 부활을 보여주셨고, 또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태어나 영의 몸을 입지 않는 자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때는 만유를 회복하는 때다. 사도행전 3장 20-21절에서『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만유가 회복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오시지 않는다. 그 역할은 교회가  할 것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건물에 모이는 성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건물을 중시하지만, 초대교회 당시는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가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교회는 모이고 흩어진다. 사도행전 2장 46을 보면『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가정이 중심이 되어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떡을 떼며 모였음을 알 수 있다.『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인다는 것』은 성령으로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서로 논의하고 함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흩어져서 논의한 전략대로 전도에 힘쓰는 것이 바로 교회의 본래의 모습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만 한다. 

마태복음 28장 19-20을 보면『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복음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하고, 원래 있었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만 한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사탄이 이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기 위해서는 사탄의 세력을 정복해야만 한다. 그 세력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십자가에 죽은 예수와 연합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탄을 정복하는 길이다. 교회는 목표가 아니라 사명이다. 교회의 사명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 많은 환란을 겪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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