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창세기 12장 5-6절『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구원의 시작과 종말을 발견해야만 한다. 아브라함이『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가나안에 들어갔는데, 그 땅을 지나가는 것이다. 나그네처럼 잠깐 들렀다는 것인가? 하나님은 가나안이 약속의 땅이지만 그 땅을 통해서 하늘에 있는 나라가 참 가나안임을 깨닫게 해 주신다. 가나안은 지나가는 (pass over) 곳이지 종점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지나가는 삶이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남방은 헤브론이다. 가나안을 통과하여 헤브론으로 간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여정이 이렇게 아브라함의 여정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구원의 약속을 받고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일깨워주신다.『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가나안에 들어가서 찾아간 곳이 바로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른 것이다. 모레는 히브리어로 무당, 점쟁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상수리 나무는 가나안의 문란한 종교의식을 상징한다. 호세아 4장 12-13절에서『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아브라함이 도착한 곳이 이방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처음부터 인도한 것이 아니었다. 출애굽한 백성들도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전쟁을 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북쪽으로부터 가나안(갈릴리 지역)을 통과하여 남방으로 내려간 것이다. 갈릴리 지역은 토양이 비옥하여 살기 좋은 곳이나, 남방은 황무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가나안 지역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이방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 만의 풍요를 독점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간 상황과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이유인 것이다. 성도가 되기 전에는 세상에 속한 자가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은 세상을 등지고 사는 자가 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갔을 때는 세상에서 주는 것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추악하고 어두운 것인지 모르다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그 속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의 속성과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도는 이 세상이 가나안처럼 풍요와 다산을 쫒는 것으로 둘러 쌓여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곧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게 하지 않고, 처음부터 이방신전을 보게하셨는가? 하나님은 성도들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세계는 이 세상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이 세상 속에 있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라는 것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풍요와 부함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의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살아가는 자임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믿음의 선택을 종용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15-18절에서『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은 바로 죄악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육신의 연약함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을 이루어가게 하신다.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인 것이다.
세상에 눈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뜬 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된다. 빌립보서 2장 15절에서『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가나안은 뿌리 박고 살 땅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곳이다. 가나안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이정표와 같은 곳이다. 가나안은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히며, 성도가 싸워이겨야 하는 곳이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순례자가 평가받는 곳이기도 하다. 신명기 8장 2-3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가나안 세겜땅 모레 상수리 나무를 통과하게 한 것은 일종의 믿음의 시험이셨다. 이 세상은 성도가 살아가는 믿음의 시험장인 것이다. 창세기 23장 2-4절에서『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이브라함은 자신을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고 말한다. 믿음의 선진들도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다.
창세기 23장 6절에서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아브라함의 이 말에 대해서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어떻게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라는 것을 인정했는가? 그들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삶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