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몸의 등불이니
마태복음 6장 22-24절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는 빛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이 있으면, 온 몸이 밝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이 없으면 어두울 것이다. 그 빛이 눈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이 눈은 영적인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을 것이나, 영적인 눈이 열려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영적인 눈이 열려져 있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는 자는 그리스도 밖에서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으나, 어떤 사람은 영적인 눈이 열려져 있다. 이것은 마치 빛과 어둠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는데, 인간이 물질세계에 살면서 아주 알기 쉽게 해주셨던 것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무런 의미없이 생각하고, 그냥 빛이 있으니 낮이고, 빛이 없으니 밤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이 그 동안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살았으며, 하나님이 빛을 만들어 주신 것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의 관계를 보면 빛이 오기 때문에 어두움이 물러간다. 어두움이 물러가기 때문에 빛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두움이 오는 것은 빛이 물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빛을 보내주는 해가 가니까 어두워지고 그 해가 오니까 밝아지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이 빛의 진리이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서 날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은 땅에 있을 동안 즉 물질세계에 날이라고 하는 시간 가운데 존재하는 동안에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떠난 어두움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어두움을 남겨두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 낮과 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서 인간이 밤에 속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라 고 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거의 하루의 절반을 잠자는데 소비한다. 잠은 단순히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영적으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스스로 물질세계에 빛이 되어주신다면 하나님의 빛은 어두움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스스로 빛을 비춰 주시면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성경을 깊히 알고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이다.『나는 하나님을 떠나 온 기억이 없고, 에덴동산에서 부터 아담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두움이 없다는 거룩한 속성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두움을 어떻게 창조하시는지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빛을 차단시켜 어두움이 되게 했던 것이다. 어두움과 흑암은 하나님께서 빛을 차단하시기 때문이다. 악을 창조하는 것도 하나님이 선을 공급하시지 않기 때문에 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빛을 차단하여 어두움을 창조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창조하신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낮이 있게 하시고 밤이 있게 하셔서 날을 주시고, 날마다 빛이 오고 또 빛이 가고 어두움이 오고 어두움이 가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너희는 지금 하나님을 떠나 어두움 가운데 존재하는 자들이라 고 말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숨이 있는 동안에 본래 어두움 가운데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물질세계에 있는 동안 인간이 날이라는 것이 주어졌을 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달으면 돌아오라는 것이다. 깨닫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참 빛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열심해야 해야 복을 주신다고 하는 그런 미련한 생각을 갖을 것이다. 이 빛과 어두움이라는 진리를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어두움은 스스로를 밝힐 수 없다. 빛을 비춰 주어야만 밝힐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빛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참 빛을 비춰주시는데,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안믿으면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이고 멸망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행함으로 빛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몸에 베여있는 것이 바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함으로서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날 때에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단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님처럼 권능을 가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같이 선하고 빛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을 물질세계에 내보내고 절대로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빛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빛을 주시고 어둡게 하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고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을 다시 깊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에 대해서 성경에는 많은 표현이 있다.
이사야서 42장 7절에서『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여기서 『네가』라고 표현한 네가는 메시야를 말한다. 메시야 즉 예수님이 오시면 소경의 눈을 밝히며 옥에서 이끌어 내신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예수님이 회당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으시고,『오늘날 이 글이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그 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심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게 하시고, 흑암에 처한 자를 그 간에서 나오게 하시겠다고 하는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옥에 갇히고 흑암에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예언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예언의 말씀이 응하였다』라고 말씀하시는 말씀과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으로 부터 잘려져 나와서 하나님이 없는 상태로의 어둠의 상태, 흑암의 상태로 창조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영의 세계에서 물질의 세계로 온 것은 갇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갇힌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놓아주겠다 라고 하는 것이다. 왜 성경에 하나님 나라에서 이렇게 범죄한 자들이 쫒겨나서 세상에 갇힌 것, 물질세계에 갇힌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비유를 통해서 옛 비밀한 것을 알려주겠다고 하셨고,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너희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다른 이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성경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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